Part 4. 시간
나는 변화에 민감하다. 계절이 바뀔 때, 나이를 먹을 때, 환경이 바뀌었을 때, 하다 못해 늘 일어나던 시간보다 늦게 일어났을 때도. 무언가 조금만 달라져도 낯선 기분이 든다. 생긴 거랑 다르게 생각보다 예민한 나의 모습에 나도 가끔 놀라곤 한다. 매일매일 마시는 공기가 다르고 매일 아침 일어나 느끼는 기분도 다르다. 당연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방인 마냥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계절이 바뀔 땐 항상 모든 감각이 곤두서 있다. 계절마다 간직한 공기가 달라서. 간질간질한 공기의 봄, 습하지만 쨍한 공기의 여름, 쓸쓸하지만 따스한 공기의 가을, 시리지만 포근한 공기의 겨울. 공기가 바뀜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리고 공기가 바뀔 때마다 나의 세상도 매번 다르게 변신한다. 괜히 풋풋하고 아련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쓸쓸하고 외로운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찬 바람이 부는 바깥과 벽 한 겹을 두고 집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뒹굴거릴 때면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이 든다. 시시각각 바뀌는 나의 세상과 공기는 나를 설레게 하지만 시소의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것처럼 불안정한 기분을 들게 하기도 한다.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변화에 익숙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한쪽의 기분에 치우치지 않고 나만의 세상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런 게 아닐까.
한 시간 동안 노트북을 뚫어져라 바라보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노트북 안과 밖의 세상이 분리된 것처럼 나의 세상도 나뉘는 듯한 그런 기분. 블루라이트를 뿜어내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빛에 현혹되기라도 하는 건지 빠져나올 틈 없이 빨려 들어간다. 현 세상과 왠지 모르게 분리되어 나만 따로 노는 느낌. 그 기분이 싫어 애써 떨쳐내어 보려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친구들과 카톡을 나눠도 그 기분은 쉽사리 휘발되지 않는다.
나를 그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은 늘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었다. 도서관에 다녀온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 약속 장소에서 손을 흔들며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반기는 친구에게 걸어갈 때. 그때야 비로소 나의 세상이 다시 열린다.
고개만 돌려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애쓴다. 나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이기에. 안 좋은 일이 있어 위로를 들어도 내가 괜찮지 않으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문제가 생겨도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속이 답답하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나만의 외로운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정면만 바라보지 않고 때때로는 고개를 돌려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것 마냥 나를 유연하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 나에겐 저런 세상도 있었지, 저런 사람도 내 곁에 있었지, 하면서. 나를 외롭게 묶어두는 것은 언제나 나였기에, 그런 나를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지켜내기 위해 유연해지는 것. 나의 오랜 숙제이자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