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4th battle
누구나 살면서 크고작은 인생의 굴곡을 겪기 마련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4번의 큰 도전을 가졌었던 것 같다.
1. 첫 번째, 지독했던 사춘기 시절
모두들 겪는 사춘기 이지만 나는 남들에 비해 꽤 격렬했던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무얼 하든 항상 열심이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아버지의 일본 주재원 파견으로 나에게도 주어진 새로운 환경과 도전에 처음엔 크게 동요하고 방황 했었던 듯하다.
비록 내 인생 전체에 비하면 매우 짧은 기간이었긴 하였지만, 나는 지독한 고독과 방황, 자아의 혼동, 우울증 등을 겪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거나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부정했었다.
이러한 방황과 혼돈의 시기를 벗어나 겨우겨우 나 자신을 추스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였으니, 결과적으론 그래도 그 GR 맞았던 사춘기 시절을 별 탈없이 원만(?)하게 잘 마무리 한 듯 하다.
2. 두 번째, 일본으로의 귀환
두번째 도전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니다 “아, 내가 일해야 할 곳은 이 곳 대한민국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무대로 성장해 나가야겠구나!”하는 생각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글로벌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된 일이다. 첫 근무지로 일본 나고야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신혼생활도 그 곳에서 시작했다.
고교시절 3년 이상을 보낸 일본이었지만 직장생활, 더군다나 기존의 화학업계에서 자동차 부품 업계로 전환의 갭은 생각보다 꽤 컸다. 더구나 당시 내 첫 직속상사는 파란 눈의 호주인 이었다.
정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내 일, 남의 일, 허드렛일 할 것없이 열심히 일했고, 약 3년 차가 되자 서서히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엔 내가 담당하던 일본 모 자동차 제조사로부터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신규 공장을 새우고, 당시 회사의 아태지역 대표님께 인정받아 중국으로 이전할 기회를 획득, 그리고 일본의 옛 동료들로부터 “현재 일본지사의 근간 비지니스는 대부분 앤디상의 공헌”이라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으니 두 번째 배틀도 무난히 승리했다고 할 수 있겠다.
3. 세 번째, 중국으로의 진출
위에 설명했듯 대학진학 무렵의 나는 정체성에 혼돈을 겪고 있던 시기라 앞으로 내가 뭘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인생의 목표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전공으로 중어중문과를 선택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의 아태지역 대표님이 1년 혹은 2년 단기 중국 근무를 제안하셔서 나와 와이프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중국 행을 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중국으로 이전했던 2010년도만 해도 지금의 중국과도 큰 괴리감이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낙후되고 무질서 했으며, 명확한 표준이 없었다.
우리 회사는 글로벌 회사였지만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로컬사이트를 운영하던 회사라 현지 매니지먼트의 대부분이 중국인이었고, 나와같은 외국인이 장기 체류하며 근무하던 사례는 당시엔 아직 적었다.
나는 나의 열정과 심혈을 중국 비지니스의 확장과 성공을 위해 쏟아 부었고, 그 결과는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의 대성공으로 돌아왔다.
처음엔 외국인이라 내부회의에서도 배제되고 나의 위치도 아태지역 대표님 때문에 급조된 허울좋은(?) 보직에 불과했지만, 점차 나에게 주도적이고 큰 업무들이 맡겨지기 시작하면서 중국인 상사들의 주목과 신뢰를 받으며 승진의 기회도 주어졌다.
당시 내가 담당하던 사업부문의 매출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급기야 북경에도 신규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하면서, 그 공장의 초기 셋팅 업무 및 관리의 책임자로도 승진하게 됐다.
공장 관리 2년 경험을 거쳐 새로운 사업 부문도 겸임하여 관리하게 되었고, 그 덕에 2개의 공장과 매년 평균(CAGR) 90% 이상 매출이 성장하는 비지니스 유닛의 책임자로서 로컬사람들 만으로만 구성된 중국 매니지먼트팀의 일원으로도 합류하게 됐다.
그 이후로는 아태지역 신규비지니스 개발(BD) 책임자로 승진하여 전기차 관련 프로젝트를 아태지역 각 완성차 제조사에 프로모션하는 신사업 개발 업무를 이끌기도 했으니, 중국에서의 15년은 내 캐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4. 네 번째 도전, 인도네시아로의 이전
캐리어의 성공이 곧 내 자신의 내적 소양 및 성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 후 나는 성장의 권태기 혹은 정체기를 겪으며 오랜 기간 무기력과 나태에 허덕였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자의반 타의반 2023년 말 나는 갑작스레 약 18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중국을 떠나 이 곳 인도네시아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재취업을 목표로 구직활동을 시작했지만 이런 저런 사유로 잘 되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구직기간이 반년 이상 길어지고 내가 몸 담았었던 제조업계의 경기도 불투명 해지자 기업에 소속되는 것 보다,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독립하여 할수 있는 사업을 찾던 중, 지금의 싱가폴 소재 스타트업과 함께 프리랜서로서의 경력을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다.
막상 시작을 해보니, 직장생활도 너무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모든 걸 혼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하는 개인사업은 그의 10배 이상은 힘든 것 같다.
영업도 회사의 명성에 힘입어 프레젠테이션을 잘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사업에 성공하려면, 고객사든 로컬 파트너사 이든 간에 우선적으로 상대방과 내가 서로 신뢰관계가 성립되어야 하기에 그 만큼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어쨌든 세 번째 배틀의 화약냄새와 잔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나는 생소하다면 생소한 이 땅에서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과연, 나는 이 네 번째 배틀에서도 승자 될수 있을까?!
#자기와의싸움 #버텨냄 #인생은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