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은 소위 노는 학생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은 작년 여름이 지나가기 전 시작됐다.
당시 성민의 반에는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이호석'이라는 남학생이 있었다. 그는 인근 학교 패거리와의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었고, 늘 학교 내 사건 사고의 중심인물이었다. 그래서 교사들은 다들 '이호석'학생을 담임으로 맡기 꺼려했다. 녀석은 성민과 같은 반이 되었고, 자리를 바꾸면서 하필 짝이 되었다. 다른 학생들은 평소 호석과 눈도 못 마주칠 만큼 무서워하며 피해다녔다. 그래서 자신과 짝이 되지 않음에 안도했다. 대신 말 없고 얌전한 성민이 호석의 옆자리에 당첨됐다는 불행을 안타깝게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성민은 호석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래의 남학생들에 비해 체격조건이 좋았던 성민은 조금만 관리해줘도 근육이 잘 붙는 타입이었다. 운동도 좋아해서 건강미도 넘쳤으므로 당장 누구와 시비가 붙는대도 이길 자신이 늘 있었다. 그렇다고 주먹을 휘두르고 다니는 싸움꾼은 아니었지만, 딱히 호석을 무서워할 이유도 없었다.
호석은 이를 아는지 성민과 짝이 되자 유난히 살갑게 굴었다. 평소 반 학생들에게는 눈 한번 다정하게 떠본 적 없던 녀석이 성민에게만큼은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후배들에게 강탈해온 돈으로 먹을 것도 사주고, 주말마다 여자 친구들과 놀았던 이야기도 들려주며 성민의 환심을 사려 했다. 성민은 그런 호석을 보며 녀석이 교사들이 말하는 구제불능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름 의리도 있고 정도 많아 보였다. 그렇게 둘은 서서히 친해져 갔다.
난 내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어. 그게 사나이고 의리지. 안 그래?
호석은 옆 반의 친구 민섭이 편의점을 털다 경찰서에 붙들려간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이런 말을 내뱉은 적도 있었다. 민섭은 부모님이 일을 나가시고 어린 여동생과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여동생이 한창 유행하는 크림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 훔치러 갔다가 붙들린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호석은 장발장이 빵을 훔친 것이 무죄인 것처럼 민섭도 같은 경우라고 주장했다.
네가 민진이를 못 봐서 그래. 얼마나 귀여운데. 그 귀여운 녀석이 배고프다고 칭얼댔다니 아마 나라도 그랬을 거야. 사람들은 단순히 못된 짓이라고만 생각하겠지. 난 그런 절대적인 기준이 싫어.
객관적으로 듣기에는 민섭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맞지만, 호석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묘하게 헷갈렸다. 성민 역시 호석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어른들이 정해놓은 규칙 중에는 불합리한 것들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어느새 성민은 '사회적 정의'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뒤집고 싶다는 반항심도 자랐다. 성민은 점점 호석에게 빠져들며, 그동안 쌓아왔던 가치관마저 혼돈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성민이 호석과 부쩍 어울리기 시작한지 한달 쯤 되던 날, 담임 교사는 성민을 따로 불러냈다.
너 이호석이랑 가까이 지내지 마. 그러다 네 인생까지 망가져.
담임 교사의 충고는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성민은 오히려 교사의 그런 언행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학교 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호석이 그렇게 위험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도 호석의 마음을 이해해주려 하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권투선수였대. 내가 아버지 피를 물려받아서 태어날 때부터 주먹이 세지. 뭐, 어릴 때 이혼하셔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긴 했지만. 너도 '아빠 없는 애'라고 놀림 받아봐. 눈깔 돌지. 그러다 보니 이렇게 싸움짱이 됐잖냐 내가.
가끔 호석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성민은 녀석이 매우 안쓰러웠다. 결국엔 아버지의 빈자리가 호석을 거칠게 만들었다는 결론이었다. 그래놓고 순전히 호석에게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려 하다니. 어른들은 정말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민은 교무실을 나오는 내내 담임 교사가 치졸하다고 느꼈다. 학생들을 이간질하는 교사는 참된 교육자가 아니라는 덧붙임과 함께.
담임이 너 왜 불렀대?
성민이 교실로 돌아오자마자 호석은 옆 반 친구인 양국과 놀다 말고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그냥.
성민은 차마 '담임이 너랑 놀지 말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건 녀석에게도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그냥?
호석이 성민의 눈치를 보다가 양국을 옆반으로 돌려보냈다.
어. 그냥. 성적이 좀 떨어졌다고.
성민은 대충 둘러대며 다음 수업에 공부할 윤리 교과서를 꺼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호석이 아니었다.
담임이 나랑 놀지 말래?
그리고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냈다. 성민은 너무 놀라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한 채 호석을 쳐다봤다. 그러자 녀석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야.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내가 왕따라도 당하길 바라나 봐. 너만 불려간 거 아냐. 긴장 풀어. 쨔샤.
되레 성민의 어깨를 툭 치며 싱겁게 웃어버리는 호석이었다.
성민은 호석의 그런 면이 좋았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무섭다고 소문난 호랑이 학년주임 교사가 고함을 질러댈 때도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녀석이었다. 성민의 눈에는 시원시원한 호석의 성격이 진정한 '남자'라고 느껴졌다. 호석은 학교 내에서는 죽도록 미움받는 존재지만, 친구들만큼은 녀석과 똘똘 뭉쳐다니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그것이 호석이 늘 말하던 '사나이들의 우정'인 것 같았다. 호석 역시 성민의 이같은 마음을 알아챘는지 어느 날 책가방을 싸다 말고 대뜸 성민에게,
나, 너 맘에 든다.
라며 눈을 찡긋하고 나가버린 일도 있었다.
성민의 생각에 호석은 꽤 매력적인 '사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