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막내는 배려심이 많다.
할머니랑 동승하여 어디갈 때는 차가 멈추면 재빠르게 내려서 할머니 뒷자리 문을 열어드린다.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실 때 잡아드린다며 조그만 손을 내민다. 물어봤더니 할머니가 내리실 때 넘어질까봐 그렇다고 한다. 길을 걸을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이 걸으면 꼭 손을 잡아드린다. 자기는 힘이 세니까 안 넘어질 수 있다면서.
또 내가 식사준비를 하고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 도와줄 게 없는지 묻는다. 시키는 심부름도 잘한다. 형아가 먹은 것까지 뒤처리를 도와준다. 시킨적도 없는데 아기때부터 쟁반을 들고 서서 이런다.
성향이 이렇다보니 밖에 나가서도 이상하게 자꾸 양보를 하고 온다. 친구가 자기꺼랑 바꾸자고 하면 싫어도 바꿔주고 온다. 그래 놓고 하는 말,
엄마 나 사실 그게 더 좋았어. 그래서 바꿔준 거야.
친구들 보여준다고 장난감 들고갔다가 애들이 달라고 하면 내주고 오는 아이다. 저번엔 무늬색종이 한봉지를 사줬더니, 친구들 다 나눠줘서 정작 본인 것은 없게 되었었다.
작년 유치원 선생님께선,
어머님, 친구가 점심시간에 식판을 받아들고 자리로 오는데 ㅇㅇ이가 의자를 빼주더라구요. 집에 갈 땐 신발도 찾아서 놔 줘요. 스윗하죠? 호호홍~
하. 선생님은 우리아이가 배려심이 많다며 귀엽다고 깔깔 웃으셨지만, 엄마인 나는 마냥 웃을수가 없었다. 아무리 배려심도 좋고 우정도 좋지만. 이러다간 나중에 호구잡히는게 아닌가 은근 걱정도 됐다.
그런데 지난주에 두둥.
학원 픽업을 갔더니 선생님께서 아이스크림을 주셨다며 아이들이 신나게 하드를 먹고 있었다.
막내도 먹고 있나 찾아봤더니 글쎄, 혼자만 더블 X얀코를 먹고 있는 거다!!
그걸 보는 순간 왜인지 웃음이 피식 나왔다. 식탐은 어쩔수 없구나 싶었다. 그리고 묘한 안도감이 생겼다. 결정적일 땐 자기 밥그릇을 챙길 수 있을 거란 희망?
그래! 어쩌면 그걸로 됐다!
참 단순한 엄마다.
그럼그럼!
더블 X얀코는 못 참지!
PS.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는 친구에게 양보하라고 가르치지만, 초등학생 아이들만 봐도 양보는 늘 하는 아이만 하더라구요. 어른들의 세계도 비슷하잖아요. 필요에 의해서 오히려 그 배려심을 이용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양보에도 완급조절을 따져봐야 하는 피곤한 세상입니다. 양보 잘하는 사람이 호구잡히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