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촌의 국민학생들에게 있어 자연과학 시간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현장학습의 장이었다.
물고기 잡기, 메뚜기 잡기, 코스모스 씨앗 모으기등 자연스럽게 자연과 교감했으니 깡촌의 아이들에겐 딱히 과학 교과서가 필요할 리 없었다.
떼죽나무 열매를 갈아서 냇물에 풀면 하얀 배를 뒤집고 날 잡아 잡숴 떠오르던 중태기 버들치가 지천이었고 쉐기풀 줄기에 주렁주렁 꿴 메뚜기의 양에 따라 남자아이들의 서열이 생겨났으며 전교생이 코스모스 씨앗 모으기에 동원되었을 때 그 중 조숙하고 로맨틱 가이였던 남자야이들은 핫핑크 코스모스 꽃잎으로 만든 꽃 목걸이를 만들어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애들에게 은근슬쩍 건네기도 했다.
해가 산허리를 감을때 쯤 현장학습에 지친 아이들의 헛헛한 배를 채워주던 것들이 산야에 지천이었다. 남자 아이들이 근처 혹부리 영감 과수원에서 사과를 서리해 오면 학교 세족장 옆 플라타너스 그늘에 모여 사이좋게 나눠먹곤 했다. 볼록한 배를 까고 누워 하늘을 보면 과수원 주인장 손아귀 같은 넓적하고 거무튀튀한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나를 덥석 낚아챌 것 먼 같았다. 서리족의 공동정범 내지는 방조범으로서 내심 불안했으니, 이파리 사이로 비치던 햇살의 눈부심이 아직도 기억속에 선연하다.
부족한 것 천지였으나 전혀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으니 그때 그 시절이 바로 우리들의 엘도라도& 아방궁& 천국이였지 싶다.
양동이 가득 잡은 물고기는 선생님들의 월식사 담당이었던 학교 앞 순이네 집으로 배달되었고 메뚜기 쉐기풀 한줄 엮기가 과제이기도 했으니 그 많던 수렵활동은 지금 생각해보면 다 선생님들의 자연학습을 가장한 생존계략의 일환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그 싫지만은 않았던 계략들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축억속의 아름다운 한 장면이 되었다.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그리움이 되고 또 그 그리움엔 면역이 없으니 그 때의 순수한 애락무극의 기억으로 지금이 빛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