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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Aug 30. 2024

이령의 꼴통성장실화-꽁트 16탄 -명절풍경

 우리집은 영천이씨 집성촌의 종가집이었다.


 명절 전날부터 외양이 똑 닮은 (핏줄은 대를 잇는다) 근동 서너 마실 종씨들이 왁자하게 몰려들었다.


 부랑키로 치면 8월 염천의 땡초 같은 종부, 울 모친의 진두지휘 하에 올케, 숙모들, 아지매들은 수십명의 손님을 치르기 위해 이삼일 합숙도 불사, 일사분란하게 명절 준비에 돌입했다.


 종손인 울 부친을 위시해서 팔촌이내 오라비와 당숙, 아재들은 선산 벌초며 단장, 제사 준비로 분주했다.


 근본 아들이 많은 집안이라 종씨 어른들이 대동하고 온 아들내미 수십명이 온 동네 골목을 들었다 놨다 시끌벅쩍 했고 급기야 내 방까지 침입했던 그 분잡함이 참을 구 없이 못마땅하기에 이르렀다.


 맏딸인 나와 여동생, 사촌 여동생, 육촌 여동생 둘, 딸랑 도합 다섯명의 딸래미들은 어른들의 잔 심부름이며 청소담당, 집사의 일, 마치 무수리들처럼 봉사를 이설없이 수행하곤 했다.


 나는 심부름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허리 펼 새도 없이 상은 여자들이 다 차리고 받아만 먹는 남자들의 처사가 더 참을 수 없이 못마땅했다.


 제수를 진설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신기했으며 한복을 차려입고 지방을 쓰는 남자어른들의 모습이 음식준비며 설겆이 담당 여자어른들보다 더 중차대하고 멋있어 보였다.


 "아버지, 저도 지방 쓰고 진설하는거 할래요!"


 서자 출신인 막내 사촌 오빠는 제사 지낼때면 다른 남자 핏줄들과 달리 맨 뒷자리에 서게 하던 분위기(당시만 해도 유교적 가풍을 목숨처럼 지키던)에서 더군다나 아들도 아닌 딸인 나의 그런 요구는 한마디로 어이상실 발언이고 도발이었다.


 물론 무시당했다. 난 그때 알았다. 우리집은 남자랑 여자랑 적서차별까지 태생과 동시에 요구되는 기대치가 다른 개똥같은 가풍에 저당잡힌 시대착오적 후진성에 있어 근동 최고 으뜸인 집안이라는 걸.


 그날이후 서자 출신인 막내 사촌 오빠와 딸이라는 이유로 서러운 나는 제사는 빼먹고 동네 너머 연못둑에 앉아 붕어낚시를 함께 하며 노을이 붉은 눈물을 흘리며 서산마루를 타고 넘을때까지 서로의 암묵적 소외를 잠잠다독이곤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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