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이후 나는 일명 눈물기피증을 앓고 있다.
학창시절 성적이 상위권에서 하위권으로 고속 수직낙하한 적 있다. 인근 남고 주먹짱과의 중차대한 연애활동의 지대한 영향뿐만아니라 학교 앞 육화오락실에서 갤러그 10탄, 테트리스 32탄 완파, 당시 나의 뇌 매커니즘을 혼돈의 장으로 흔들어 놓았던 일명 빨강책( 성문종합영어와 수학의 정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세계가 그 속에 숨쉬고 있었다.) 100여권을 섭렵하느라 공사다망했던 관계로.
기말고사 성적표가 집으로 날아든 날, 아빠는 대문 밖으로 쫓아내셨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죄없는 엄마까지 더블로.( 아빠가 날 만드시고 엄마는 낳은 죄밖에 없는데 왜 아빠는 화만 내고 엄마에게 연대책임을 물으시는 건지 더구나 성적이 바닥을 친건 순전히 내 문젠데 -당시 내 판단엔 수긍이 가지 않던.)
매우 가부장적이고 불합리한 처사가 아닌가 말이다.
그날이후 공부라는 걸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을 잠시 먹기도 했다. 엄마가 울었으니까(나는 여자의 눈물에 매우 취약한 성정이다. 특히 연대 책임을 지고 같이 쫓겨 난 가련한 엄마의 눈물엔 더욱더!)
돌이켜보니 엄마의 눈물 앞에서 연을 끊은 것이 많다.
교회오빠 L군을 끊었고
나의 두번째 엘도라도 육화오락실을 끊었고
어린시절부터 따라다녔던 주의력결핍도 끊었으며
이생에선 타전할 수 없었던 한 사람도 아프게 끊었다.
문득 드는 것이다. 엄마는 알까?
그 눈물이 아직 내 가슴에 마르지 않는 슬픔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잠시 박제되어 있을 뿐, 실은 어떤 눈물로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의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