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atermelon
Aug 22. 2024
광고회사에서 광고를 만들 땐, 주로 촬영을 한 후에 편집을 하고,
그 뒤에 영상에 붙일 목소리, 즉 내레이션을 녹음한다.
전문 성우를 쓰기도 하지만, 빅모델이 출연하는 광고의 경우, 그 모델이 녹음을 한다. 촬영 후에 하는 녹음이라 이를 '후시'라고 부른다.
한 번은 너무 바쁜 배우와 일을 하게 되어, 이 후시 일정을 확보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드마라 촬영을 앞두고 있었고, 이 드라마는 지방 촬영 분량이 있었으며
심지어 다음 달에는 해외 일정도 있다고 했다.
해외 소속사는 정말 파워가 세서, 배우 본인도 스케줄에 대한 의견을 내지 못한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광고주와 모델계약을 다 했는데, 촬영일 2일 빼는 것이 이렇게 험난할 줄이야.
당장 2-3주 뒤에 촬영을 해야 하는 데, 오늘이 회장님 보고인데 아직도 배우님 일정이 안 나왔고, 언제 일정이 나올지도 확답을 줄 수 없다는 모델 에이젼시에 말에 너무 답답했었다.
그렇게 극적으로 촬영일을 잡자, 그다음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시.
배우님이 해외 촬영을 가야 해서, 촬영을 한 그 주, 금요일에만 스케줄이 빈다고 했다.
촬영을 화요일~목요일까지 하고, 금요일에 녹음을 하라니.
편집본도 없고, 스텝들은 밤새면서 촬영을 한 몸인데, 금요일에 후시를 따라고?
말이 안 된다고 여러 번 설득했지만,
배우님이 그다음 주 월요일에 출국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배우님이 출국해 버리면 우리는 그냥 당하는 것 아니냐, 그러면 금요일이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아서 협의해 온 일정이라고 모델 에이젼시가 어려움을 토로한다.
여러 번 설득하고 논리를 들이밀어도 협의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 후시 일정을 제작팀과 촬영 감독님에게 전했다.
그런데, 우리 팀장님께서 "왜 말도 안 되는 일정이라는 것 알면서, 그것을 바로 OK 했냐. 조율을 해야지."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모델 에이젼시랑 이것 때문에 매일같이 통화하고 설득했는데, 그 결과로 겨우 얻어낸 일정인데, 그래서 어렵겠지만 알아보려고 하는 건데, 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을 선택함인데, 왜 뭐라고 하시는 거지?
내가 느낀 첫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그 감정을 정리하고, "네, 한 번 더 알아보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지금은 억울하고, 내가 노력하지 않았다고 오해받았지만,
사실 급할 건 없다.
시간이 지나, 이 일이 다 끝나고, 그래서 결국 말도 안 되는 일정에 후시 녹음을 해서 문제없이 온에어를 하고 나면, 그땐 다들 알 것이다.
수면 밑에서 내가 얼마나 조율하기 위해, 일이 되게 하기 위해 애를 썼는지.
그도 차장때 그렇게 일해왔을 것이다.
이 순간 한 번 억울하고 오해 좀 받고 지나가지 뭐.
어차피 우린 계속 같이 일할 것이고, 이를 만회할 기회는 또 많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하다.
억울하다 토로하지 않고, 이일을 같이 신경 쓰고 있는 또 다른 이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