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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ermelon Aug 19. 2024

온에어 일주일 전

마지막까지도 수정해야 하는 광고회사의 생리

온에어 일주일 전,

정말 중요한 광고주 컨퍼런스 콜이 있었다.


글로벌 브랜드었는데,

한국지사의 담당자부터 담당 임원까지

유럽 본사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그의 보스까지 들어오는 중요한 회의.

이 브랜드의 또 다른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회사의 유럽 담당팀도 참석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제기되지 않았던 새로운 이슈가 논의되었고

그에 온에어를 앞두고 있는 광고 소재가 난도질당했다.

이는 3D 작업이 필요한 큰 수정이었다.


난 물론, 침착하지 못했다.

컨콜 도중에 부사수 보고 씨디님 퇴근하셨는지, 퇴근 안 하셨으면 기다려달라고 부탁해 달라며 내보낼 정도로.

이미 6시가 훨씬 넘은 이 시간에 말이다.


컨콜이 끝나고

나를 진정시켜 줬던 건, 어찌 보면 가장 멀리 지구반대편에 있었던 우리 회사의 유럽 담당팀의 팀장이었다.

우리와 같은 브랜드를 담당하지만, 사실 우리 캠페인보다 자기 나라에서 하고 있는 캠페인이 더 우선순위 었을 팀장.


컨콜이 끝나고, 대책을 세우는 2차 컨콜을 그녀와 그녀의 팀과 했다.

컨콜에 접속하자 그녀의 첫마디.

"How much is your love for Y?"

여기서 Y는 광고주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다.


그때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Very little right now" 내가 답했다.


그녀도 같이 웃고는 물었다.  

"Are you OK?"


"Maybe"

그러고 난 내가 생각한 해결책을 이야기했다.

정말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아야 할 수 있는 복잡한 계획이었고 이상적인 계획이었다.

힘들겠지만 해보기로 했고, 우린 결국 수정된 소재로 온에어를 맞췄다.

지구반대편에 내 편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다. 그 불가능해 보였던 수정을.

우린 모두 함께 하고 있기에.



사람을 절벽 앞으로 내몰면,

그 사람이 뛰어내릴 수 있을까?

절박함에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아니, 낙하산이 있어서 뛰어내릴 수 있는 것이다.

낙하산이 있어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무섭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일도 똑같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못하는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담당자이지만, 담당자이기에 이 문제가 더 시급하고 버거울 때

기댈 수 있는 팀이 있다는 사실이 날 더 용감하게 한다.

더 과감한 아이디어를, 더 좋은 솔루션을 찾게 한다.


낙하산 없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건

자살행위이다.


광고회사가 무모하다고 하지만

우린 다 낙하산을 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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