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쓰 Aug 04. 2024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면 돼

내 마음을 다잡게 했던 한 마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활동하는 카페인 '느린걸음'이라는 곳이 있다.

나는 수호의 태어난 과정 등을 이 카페에 자세히 올리기도 했다.

정보 공유의 차원도 있지만 비슷하게 태어난 아이들의 예후를 듣고 싶어서였다.


어느 날, 한 엄마로부터 쪽지가 왔다.

수호는 아주대병원에서 세브란스병원으로 전원을 갔는데, 본인의 아이도 전원을 보내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나 또한 정보가 없어서 답답했던 그 심정을 알기에 친절하게 답해주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 역시 조산 및 뇌손상으로 인해 NICU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는데, 수호보다 상황이 조금 더 나빴었다.


다행히 그 아이도 세브란스병원으로 전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고마운 마음에 간식거리를 사서 우리 집으로 왔다.


그 집에는 '현이'라는 아이가 있다. 1.5kg으로 태어났으며, 뇌의 대부분이 손상되었다. 임신중독으로 인해 갑자기 출산을 하게 되었고, 다행히 산모는 건강하지만 아이가 많이 다쳤다.

현이는 자가호흡을 하지 못해 기관지 절개를 한 상태였고, 수유도 하지 못해 위루관 수술도 했다.

뿐만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여러 수술을 하면서 기적적으로 살아있는 아이였으며, 손상이 심해 평생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어쩌면 오래 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태의 아이였다.


내가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이의 부모님에게 많은 위로와 감동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이는 첫 아이이며, 현이의 아버지는 나보다 한 살 많고, 현이의 엄마는 와이프보다 한 살 많다.

지금은 가장 가까이에 살면서 누구보다 자주 교류하고 있는 부부이다.

아마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어서 더 빠르게 가까워진 것 같다.


어느 날, 현이의 아빠와 내가 치킨집에 갔다.

며칠 전 세브란스병원에서 아이의 양쪽 뇌가 껍질만 남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너무 당연하게 평생 누워있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나였으면 너무나 절망했을 상황이지만 현이 아빠는 담담했다.

"생각해 보니까 아이가 평생 누워있다고 하더라도 내 삶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 똑같이 일하고, 돈 벌고, 그냥 다른 부모들처럼 평생 예뻐해 주면서 키우면 되는 것 같아. 아이가 아프다고 내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 같아."


수호를 낳고 나서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했던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리고 또 한 마디를 붙였다.

"갓난아기를 키우면 너무 힘들다고 하는데, 난 오히려 편해. 현이는 잠만 자니까 그냥 가끔씩 가서 가래만 갈아주고, 체크만 하면 되니까. 아파서 울지도 않고 떼도 안 써. 수유도 그냥 위루관에 넣기만 하면 되니까 너무 편하더라고."

물론 본인도 평범한 아이를 누구보다 원할 것이지만 본인의 상황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너무 멋졌다. 현이 아빠는 계속해서 자신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다른 날은 현이네 부부와 우리 부부가 같이 호수공원에 갔다.

낮에 평온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자연스럽게 주제는 아이의 장애로 향했다.

나는 외부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어서 이런 말을 했다.

"나중에 아이들이랑 이렇게 호수공원에서 같이 축구도 하고, 맥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특히, 수호는 휠체어를 타고 있을 텐데, 남들이 다 쳐다보고 관심을 가질 것 같아 두려워요."

현이 엄마는 내가 한 말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남들이 쳐다보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우리 아이가 아픈 것이 잘못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봐요. 그냥 아이가 이런 곳에 나올 컨디션만 됐으면 바라는 게 없을 것 같아요."


나와 비슷한, 어쩌면 나보다 훨씬 좋지 않은 환경임에도 현이 부모는 상황을 비관하지 않았다.

항상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만 생각했던 내가 참 창피했던 날들이었다.


이외에도 현이 부모의 많은 말들이 나를 다잡게 했고, 내 생각을 많이 바꿔주었다.

그중에서도 언젠가 했던 현이 아빠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현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 볼도 빵빵하고, 손발도 너무 탱탱하잖아. 그냥 이렇게 숨만 쉬고 있는 것도 예쁜 것 같아. 물론 다른 아이들처럼 먹고, 걸을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예뻐해주려고 해. 내 아이니까."


앞으로 현이의 상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이는 누구보다 성숙하고 사랑스러운 부모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