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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사 Jul 10. 2024

[프롤로그] 누나의 카톡

누나는 네 편이야!

지이이잉..! 지이이잉..!

누나에게서 카톡이 왔다. 누나 덕분에 오랜만에 카톡을 열어본다. 요즘 잘 지내냐는 누나의 물음에 "그럼 잘 지내지"라고 답장을 쓰고 바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지금 프랑스 오를레앙(Orléans)에서 살고 있다. 한국과는 7시간의 시차가 있고, 식습관도 문화도 예절도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지낸 지 벌써 6년 하고도 2개월이 더 지났다.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카톡보다 왓츠앱(Whatsapp) 애플리케이션을 더 자주 쓰기에 카톡 전화 화면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시간 참 빠르네..."라고 혼잣말을 하자마자 누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잘 지내?" 다소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누나는 내게 물었다. 한국시간으로 저녁 9시 무렵이니, 일 마치고 집에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잘 지낸다는 뻔한 답을 하고, 설레는 마음 반, 긴장되는 마음 반으로 말을 꺼냈다. "누나, 나 할 말 있어." 누나는 할 말이 뭐냐고 자연스레 되물었고, 나는 답했다. "마틸다가 오늘 아침에 두 줄이 나왔어.. 임신했다고!" 누나는 잠깐 멈칫하더니 금세 큰 소리로 축하해 주었다. 사실 누나는 내가 프랑스에 가기 전에 결혼했다. 결혼한 지 7년이 넘어가는데도 아직 아기가 없었다. 그런 누나에게 한 핏줄 아래 새로운 생명이 곧 태어날 거라는 소식은 매우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렇고, 나의 사랑하는 아내인 마틸다에게도, 아빠와 친척들에게도 큰 기쁨이다.


 하지만, 한 분이 마음에 걸렸다.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에게 마틸다의 임신 소식을 전할 생각을 하니 숨부터 막혔다. 마치 운전 중에 너무 높은 과속방지턱을 만나, 지나갈 엄두가 안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언젠간 이야기해야 하기에, 내 차가 긁히더라도 뚫고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누나와 함께 임신 소식의 기쁨을 나누고 나서, 누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누나, 엄마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누나는 일단 임신 안정기에 접어드는 3개월이 되고 난 뒤에 부모님께 알릴 것을 권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누나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이어서 말했다. "네가 엄마한테 아픔을 주기도 했지만, 엄마는 분명 좋아하실 거야". 엄마가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말로라도 좋게 이야기해 준 누나가 고마웠다.

"응, 그렇겠지? 그러실 거야".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 나는 엄마에게 아픔을 준 사람이다. 이 세상에 엄마, 아빠, 가족에게 한 번도 상처를 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늦은 나이에 아픔을 드려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이 아픔 때문에 엄마는 더더욱 묵주를 놓지 못하신다. 우리 가족은 천주교 집안이고, 내가 10살이던 때부터, 매일 밤 가족 기도를 바쳤다. 엄마는 늘 내가 천주교 신부가 되기를 바라셨다. 나는 그 기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신부가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순탄하게 돈이나 명예, 이성에 대한 큰 유혹 없이 신학교에 들어가 학사 과정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신부로 서품 되는 큰 영광을 맛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가족의 자랑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아들이, 신부로 살다가 서른두 살에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니.. 그것도 말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 여자와 살겠다고 충격고백을 하니.. 엄마로선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아픔이 크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엄마와 통화를 안 한지 두 달 가까이 되었다. "조만간 전화드려야지.. 드려야지.." 혼자서 되뇌다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시간이 지나간다고 이 아픔을 잊을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먼저 내가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이 아픔이 조금은 몽골몽골 하게 풀어지실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교차한다. 아빠에게 전화하면 아빠보다도 조금이라도 더 내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시던 엄만데, 지금은 오히려 거리를 두고 계신다. 수화기 너머로 또렷이 느껴져서 더 마음이 아프다. 엄마의 아픔이 나의 마음에도 번지고 있음을 느낀다.


누나는 이런 나의 마음을 잘도 읽었다. 그래서 누나는 통화 마지막에 덧붙여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마, 누나는 네 편이야!"

나는 누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적이 없는 거 같은데.. 누나에게서 또 고마움과 미안함,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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