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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사 Aug 07. 2024

[어린 시절(4)] 엄마의 눈물

사랑의 매

나는 살면서 엄마의 눈물을 딱 한번 보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팍... 팍...  파악..."


얇은 나무줄기를 엮어 테이프로 붙여 논 두꺼운 막대기가 내 엉덩이를 치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회초리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프지 않았고,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파아악... 파아악......"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고요함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엄마가 눈물을 흘리시다니...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안 아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눈물을 보자마자 곧장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맞을 이유가 있어서 맞고 있었다.

엄마가 회초리를 드시기 며칠 전, 학교에서 유행하던 포켓몬 장난감을 사고 싶었던 나는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계속 사달라고 졸라댔었다. 끝까지 사주지 않겠다고 하시자, 나는 점점 엄마에게 심술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엄마가 흰 봉투에 돈을 모아두시고 거실 텔레비전 아래 서랍장 구석에 넣어두시는 걸 보게 되었다. 나의 심술은 불행히도 점점 불이 붙어,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엄마의 흰 봉투에서 오천 원을 빼서 문구점으로 향했다. 심술궂은 마음과 함께 내가 원하던 장난감을 손에 넣으니 만족감이 들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느낌은 너무나 짧았다.

내 양심도 내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부끄러움과 후회, '내 잘못이 발각되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 사건 이후, 엄마가 텔레비전 아래쪽을 보실 때마다 내 마음이 불안하고 찔렸다. 잘못을 알지만 '잘못했다'라고 고백할 줄 아는 용기. 나는 이 용기가 없었다. 어렸을 때의 일이라고 핑계삼을 수도 있지만,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 용기가 좀 모자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성당에서 비밀리에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자주 보았다.


은근히 긴장하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눈치를 채셨던 걸까?

사건 발생 약 일주일 후, 여느 때처럼 밤 8시경에 퇴근하신 엄마는 여느 때와 다르게 옷도 갈아입으시기 전에 나를 안방으로 부르셨다. 나에게는 아주 낯선... 고요-한 분위기였다. 침묵은 나의 잘못을 더 옥죄는 듯했고, 빨리 이 방을 나가고 싶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흰 봉투 안에 돈, 네가 가져간 거야? 어디에 썼어?"

엄마가 또박또박 나에게 물으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엄마가 알았으며, 가져간 사람이 '나'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시는 건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혼이 날 거라는 사실에 공포감이 차가운 파도처럼 밀려왔다.


"포켓몬 장난감을 사고 싶어서 샀어요.. 다시 절대 안 그럴게요..."

이 상황에서 나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다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엄마는 조용히 옷장 구석에 있던 나무 회초리를 꺼내셨다.


"엎드려, 힘주면 더 아프다".

엄마는 아주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급속도로 냉각되는 방 안의 공기. 나는 곧 엉덩이에 불이날거라는 무서운 상상을 하며 방바닥에 엎드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는 나를 향한 엄마의 첫 '사랑의 매'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의 매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엉덩이가 아프지 않았고,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5대를 힘없이 때리시더니,

"내 아들이... 이런 짓을 하다니.... 엄만.... 우리 아들 믿었는데... 너무 실망했어......"라고 하시고, 흐느끼기 시작하셨다.


나도 엄마와 함께 울었다.

죄송함, 부끄러움, 후회, 내 욕심에 대한 반성, 나를 세게 때리지도 못하시는 엄마의 나를 위한 마음 등등..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마음속에 머물렀던 순간이었다.


이 날 이후로 당연히 나는 무언가를 훔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의 욕심이 드러날 때는 늘 이 사건이 떠올라, 나를 지혜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엄마의 눈물은 한순간이었지만, 나의 기억과 마음에는 힘찬 파도처럼 생생히 살아있다. 이 글을 빌어 엄마에게 고맙고 죄송했고 또 사랑한다는 진심을 전해 본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카부르(Cabourg) 해변의 파도 (2024년 8월 4일 저녁 일몰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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