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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오 Oct 06. 2024

근로능력 : 없음

상세불명의 우울 에피소드

2021년 10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나는 서울시가 인정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1년 3개월 간 나는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이었고, 생계, 주거뿐 아니라 의료급여 수급자에도 해당이 돼서 오래 다닌 정신과를 방문해도 병원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 수급 판정을 받은 해 나는 겨우 삼십대 초반의 나이였다. 정신장애 판정까지는 아니어도(불가능하진 않지만 주저됐다) 10년 앓은 양극성 정동장애로 지지부진 이어오던 사회생활을 정지해야 했다. 그렇게 원하던 로스터리 카페에 정규직 바리스타로 입사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때, '다시' 고장나버렸기 때문이다. 급작스레 일을 못하겠다고 울어제끼는 나에게 세상은 위로 한마디 없이 비난의 일침을 가했다. 쿵, 그렇게 어딘가 끊어져버린 것 같았다. 나와 세상을 이어주던 끄나풀 같은 것이.


사회적으로 무능함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공식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내가 세상을 믿고 싶어하는 만큼 바깥에는 나를 의심하고 질책하는 것들로 가득하다는 걸 그때 배웠다. 물론 공식적으로 정해진 서류 항목이 있어서 발바닥이 땀이 나도록 준비하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근로 없이 한달 90만원이 채 안 되는 고정 생활비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그걸 했다. 나머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명줄을 이어갔다. 어떻게 살아는 왔는데 건강상태가 좋아질 리 만무했다. 늘 위축되고 무력했으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조울증의 가장 힘든 점은 무분별한 충동성이 아니다. 안전한 관계에서 실패와 수정을 반복해 경험하는 게 호전으로 가는 루트인데, 바로 그 질환 때문에 관계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생 투약생활을 하며 관리해야 한다는 이 까탈스러운 조울증은 오래 앓을수록 인지기능, 기억력 등 많은 기능이 떨어진다. 인지기능이 떨어진다는 건 내가 한 잘못을 왜곡해 기억하거나 아예 머릿속에서 까맣게 칠해져버리기도 하며, 그로 인해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므로 모든 조울증 환자가 이렇더라는 판단은 금물. 그리고 지금도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지나가버린 자질구레한 약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불안하면 손가락이 제멋대로 떨리는 증상이 있었고, 지금도 양치할 때는 왼쪽으로 솔질을 빠르게 할 수 없다.


고백하자면 내가 가장 긴 시간 한 직장에 근무한 기간은 10개월이다.(퇴직사유 : 직장 내 성희롱) 야속하게도 정신질환자가 매순간 무슨 일로, 어떤 기분으로 그만뒀는지 세상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도 구태여 설명하고 싶지 않아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살아온 것 치고 합격률은 높았던 편이다. 적어도 지금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거기엔 부득부득 증오했던 대학 졸업장 덕분도 있을 테다. 어느 날, 6년 간의 서울살이를 그만두기로 했다. 서울에서 이루고 싶은 꿈도 없고(꿈은 있지만 그게 서울이어야만 하지 않게 됐다), 서울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됐다. 짧지 않은 시간 가장 가까이서 내 사정을 봐왔던 사람과 헤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잠든 숱한 밤이 무색하게 나를 그저 "근로능력 없음"으로 기술했다. 내 심정과 사정은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그와 헤어지기 전 합격한 회사에 입사예정일을 연기 요청했다. 2022년 12월, 그와 헤어지고 딱 2주를 쉬었다. 이후로는 쉼 없이 일을 해왔다. 정신질환 때문에 어차피 망가진 커리어 그냥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고 싶은 만큼 있다가 환승이직을 하는 식으로. 어쨌든 밥벌이를 하고 있다. 정신질환자에게는 이 감각이 굉장히 유용하다고 생각해 나중에 따로 적겠다. 와중에는 서울 바깥으로 이사도 했다. 덕분에 전혀 다른 일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의 일들로 관련 소재로 소설 쓰기를 위한 감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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