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안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
우울증의 대표증상이 무기력함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짧은 산책을 권한다. 오늘 나는 감히 노동을 권하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꼭 풀타임 잡이 아니어도 된다. 규칙적으로 일어나 몸을 청결히 하고 제때 식사를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좋다. 유병자에게 루틴이 필요한 이유는 대단히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로 살기 위해서다.
나는 처음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을 때 약효 때문인지 증상 때문인지 한달 내리 잠을 잤다. 화장실에 갈 때를 빼곤 줄곧 누워 지냈다. 그때 내 기억은 잘라내기 한 것처럼 삭제됐다. 진단을 받기 전에는 괴로운 생각을 멈추고 싶어서 수면유도제를 밤낮 없이 복용했다. 긴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가 겪은 최악의 상황이 허구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치료를 시작한 한달 동안 쏟아지던 잠은 누군가에게 발목 잡혀 속수무책을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고, 후자의 경우 의식이 들어도 억지로 눈뜨지 않으려 애썼다는 점이다. 우울증의 무기력은 내가 원치 않아도 나를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우울삽화일 때는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지지만 적극적으로 도피할 기력조차 없다.
직장에서 많은 사람과 관계하며 한 사람의 몫을 증명해내는 건 유병자가 아니어도 갖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더욱이 살얼음판을 걷듯 자기 기분을 살펴야 하는 정동장애 환자에게 사회생활은 지나친 자극에 맨살의 자신을 내던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회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짧은 산책을 권하는 건 유병자에게 작은 성취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잘 먹이고 잘 씻기고 잘 재우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1년 3개월만에 다시 일을 시작한 계기는 타인이었다. 물론 자주 도망치고 싶었고 그때마다 환승이직을 택했다. 무턱대고 일을 그만두면 지금껏 얼마나 자신이 애써왔는지와는 상관없이 패배감이 나를 주저앉힐 것을 알았다. 퇴사한 이튿날 새 직장에 출근해 쉼없이 일했다. 생계를 위함이기도 했지만 사회에 섞여 무탈히 기능하고 있다는 감각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평균적인 정년퇴직의 나이를 생각할 때 내가 직장생활을 할 날은 앞으로 30년도 남지 않았다. 그건 살아온 시간보다도 짧은 시간이다. 남들처럼 10년씩 근속해서 두둑한 퇴직금을 챙기기도 어렵고, 탄탄한 이력을 쌓아 이루고 싶은 직업적 목표도 없다. 스무살 이래로 내가 준비하고 거친 모든 직업은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한 생계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기왕이면 좋아하는 걸 하는 것보다 글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는 곳으로 발길이 향했다.
기초생활수급자 판정을 받고 나서 내가 또 고민한 건 정신장애 판정이었는데, 보통 직장에 들어가 어울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이 만류해 결과적으로 신청도 해보지 않았지만. 대신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을 바꾸었다. 공장에 취업한 건 몸을 바삐 움직이면서도 같은 동작을 단순반복하면 되기에 공상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단순반복된 공장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루틴이어서 정신적인 안정감마저 들었다. 물론 그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겪는 일들은 때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 요소가 됐지만, 긴장 섞인 상황은 또 어떻게든 지나간다는 걸 배웠다.
처음 루틴과 패턴에 대해 알게 됐을 때 나는 그 둘을 헷갈려했다. 내가 느끼기에 루틴은 체크무늬고 패턴은 페이즐리 무늬였다. 패턴도 루틴처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묘하게 다른 부분을 찾을 때가 있다. 또 루틴은 어렵게 직조하는 것이지만 패턴은 외상에 의해 '형성'된다. 그렇다고 루틴은 좋은 것, 패턴은 나쁜 것이라고 할 수 만도 없다. 나도 모르게 형성된 패턴을 파악하면 나에게 필요한 루틴을 추구하는 데 보탬이 되곤 한다. 가령 나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무리해 내 바운더리를 낮춘다. 때문에 누구든 곧잘 가까워질 수 있다. 문제는 원하는 만큼 상대가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나를 들여보내주지 않을 때 나는 몹시 깊이 좌절한다. 이제서 그것을 안 덕분에 패턴의 무한생성을 막기 위해 어떤 루틴을 가질 것인지 고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