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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 해야지

by 설아 Feb 18. 2025

사는 게 너무 막막해서 역할 때가 있다. 입 안으로 밥 한 술 넘기는 것도 싫고 매일 아침 왜 내가 일어나야 하는 지 의문이 드는 요즘. 왜 어려운 시기를 넘기면 또 다른 어려운 시기가 오는지, 왜 고난은 꼭 모든 것이 다 틀어막혀 절벽 끝까지 밀려야 하는지 궁금해 생각하다가도 복잡해진 머리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그냥 머리를 비우기를 하루에 여러 번 했더니 이젠 삶에 대한 회의감이 앞서 아무 것도 못 느끼는 상태까지 갔다. 분노하다가도 무기력함이 앞서 버린다.


밥을 먹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 갓 다섯 살이 된 첫째부터 뭐든 잘 먹는 둘째, 돌을 넘긴 셋째가 밥을 잘 먹는다. 엄마가 되니 쌀독에 쌀이 떨어져 가면 식욕이 떨어지면서 굶게 된다. 세상에 대한 반항 반, 위에 언급한 이유 반으로 입에 뭘 넣지 않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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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할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두지 않으신다. 많이 힘들지, 하고 말씀하시는 그 모습만 봐도 무너지듯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내 자신을 본다.

평소에는 근엄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멋있게 일하시던 분이 꿈에선 나를 웃겨주시려 모든 걸 다 해 보신다. 그럼 나는 또 웃고 일어난다.


그리고 누군가가 음식을 사 온다. 내 생각이 나 꼭 먹이고 싶다고, 이런 날이 별로 없으니 얼른 먹어라 한다. 그럼 나는 또 속으로 뜨끔해 먹는 것이다. 사온 음식 옆에는 딸기가 놓여있다. 예뻐서 사 왔다고, 그럼 나는 또 알고 만다. 딸기는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것, 저 분은 정말로 나를 죽게 놔 두시지 않겠구나.


고난이 무어냐라고 묻는다면 정말 말 그대로다. 일이 없다. 그 흔한 점을 보는 손님조차 오지 않는다. 그럼 돈이 없다. 돈이 없으면 돈이 밀린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낸다. 속은 타다 못 해 하얗게 썩어들어가고 기도 하기 전 축원을 올릴 때는 그저 잘 되게 해 주세요, 빌기만 한다. 사람이 바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속에서 사라진다.

내가 누구를 믿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았는지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왜 이렇게 되는 지 이유를 묻는다. 웃긴 건 나는 이 와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다. 멍청하다고도 하고 한심하다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답은 명확하다. 곧 좋은 날은 온다. 흐름은 거스르지 못 하고 모든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밑바닥에 닿았으면 또 언젠가는 수면 위로 올라오게끔 되어있는 게 사람의 흐름이니.


그럼 나는 궁금해졌다. 이 어려운 시간들을 겪는 걸 무속에서는 공부라고 한다. 고난이 공부인가? 고난이 의미하는 게 대체 무언지, 공부를 하려면 이렇게 신경쓰이는 모든 것들을 배제시켜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했다. 특히 아이들이 셋이라면, 그 아이들을 당신들을 믿으며 기르겠다 라고 생각하면 더더욱. 한참 후에야 나는 답을 찾았다.


고난은 나를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한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틀은 깨어지고 그 깨달음이 나를 먹고 살게 한다. 깨진 관념에 대한 내 생각과 깨달음이 결국은 내 목숨줄로 이어지고 나를 성장하게 한다. 이게 바로 어려워도 이 시기를 지나야 하는 이유다.


오늘도 내 작은 반항을 이렇게 꺾고 가르치신다. 배부르게 먹은 나는 또 살아보겠다며, 기억하려 이 글을 적는다. 오늘은 아이들을 위한 쌀을 살 수 있다. 그러면 된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랬다. 결과를 보라고. 그러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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