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容弼(조용필)7集(집)』

PART 4. 0-76-28

by GIMIN

조용필은 1984년에『アジアの花火[아시아의 불꽃]』라는 앨범을 각각 한국어 버전과 일본어 버전으로 만들었다. (일본에서 나온 앨범이었지만, 그는 한국의 지구 레코드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백밴드’인 위대한 탄생과 더불어 이 앨범을 만들었다.) 같은 해에 발매한 그의 6집에 들어간 2곡, 7집 이후 7개월 만에 나올 8집의 수록곡 1곡과 한국 미발매곡 2곡과 안전지대의 커버 곡 1곡이 이 (두 버전의) 앨범에 (그대로) 다 들어갔다. 조용필은 이 앨범에 들어간 나머지 5곡의 노래(「그대여」는 이 앨범에서 프로토타입 버전으로 들어갔다.)에 신곡 6곡을 보태서 (새로운 ‘위대한 탄생’ 멤버들과 더불어) 7집을 만들었다. (송홍섭은『アジアの花火[아시아의 불꽃]』의 작업에 이어서 이 앨범에서도 베이스 연주와 편곡을 그대로 맡았다.)


나는 그 당시의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살인적인 스케줄 또한 감내하면서) 이 앨범을 ‘빠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경악스럽다. 「어제, 오늘, 그리고」와 「프리마돈나」는 확연히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두 곡임에도 뉴웨이브 음악의 성격을 짙게 공유했다. 이 앨범의 뛰어난 일관성은 기실 사투 끝에 획득한 결과였던 셈이다.


(「눈물로 보이는 그대」나 「들꽃」 같은 기존의 팬들을 위한 곡도 이 앨범에 있었지만,) 기존의 조용필이 만든 사운드보다 훨씬 세련된 어프로치를 지닌 사운드를 지닌 곡이 이 앨범에 가득했다. 유재하의 버전으로 잘 알려진 「사랑하기 때문에」도 원래는 조용필이 먼저 이 앨범에 수록한 곡이었다. ‘위대한 탄생’을 ‘잠시 다녀간’ 유재하가 조용필에게 ‘바친’ 이 곡은 그동안에 조용필이 추구하지 못했던 미감을 청자에게 세세하게 들려줬다. 그는 장조 발라드라는 당시 대중음악에서 흔치 않은 음악적 성격을 지닌 이 곡에서도 그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앨범 후반부에 들어간 세 곡은 이 곡을 포용한 그의 음악적 ‘변화’가 단순한 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는 듯하다. 하드 록 특유의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미지의 세계」, 건반악기의 리드미컬한 연주가 인상적인 「아시아의 불꽃」, 간단한 리듬과 코드로만 이뤄졌는데도, 여전히 ‘젊은’ 「여행을 떠나요」에 이르기까지. 조용필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좋은 흐름을 이어가는 이 3곡은 앨범의 피날레를 그야말로 훌륭하게 맺었다.


이 앨범의 레코딩에 참여한 ‘위대한 탄생’ 멤버들 또한 다채롭고 능숙한 연주로 이 앨범의 사운드를 더욱 세련미 넘치게 만들었다. (신스 팝인) 「그대여」나 (간주 연주가 상당히 독특한) 「내가 어렸을 적엔」도 조용필이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비트’와 ‘세련미’로 충만했다. 이 앨범의 이러한 ‘성과’는 (기타 연주를 맡은 조용필과 최진영의 공 또한 물론 크지만,) 드럼 연주를 맡은 김정위, 베이스 연주를 맡은 송홍섭이 이 앨범 수록 곡의 리듬 파트를 훌륭히 다잡았기에 가능했다. (건반악기 연주를 맡은 김광민은 때로는 이들을 든든히 뒷받침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정적인 어프로치의 건반 연주를 구사하며 조용필의 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가꿨다.)


조용필은 이후 또 하나의 수작인 8집을 (7집이 나온 해인) 1985년 11월에 내놨다. (시기로 미루어 짐작할 때, 두 앨범은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어설프게 두 앨범의 음악을 섞지 않는 ‘용단’을 내렸다. 4집을 통해 ‘앨범 아티스트’의 자리까지 획득한 조용필의 이 음악적 ‘결단’이, 두 작품을 모두 훌륭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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