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00만 원짜리 유아 영어 프로그램

유아 사교육 뒷 이야기

by 글로업

출산 후, 아기띠를 한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다 늘어진 티셔츠.


후줄근한 바지.


며칠 감지 않아 기름이 좔좔 흐르는 머리까지.


조선시대 천민이 따로 없다.




아이를 재우고 출산 전에 입었던 옷을 꺼내


거울에 비춰본다.


'이런 인형 옷 같은 걸 내가 입었다고?'


옷을 집어 들고 몸에 끼워본다.


통아저씨 쫄쫄이 옷이 따로 없다.



옷 사이로 빠져나온 뱃살이 킬링 포인트다.

(스웩)






출산 후의 나의 삶은 철저히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그래서인지 내 주도권을 잃고


무기력감에 빠질 때가 더러 있었다.



내 삶은 이렇게 무기력하지 않았는데...


반짝이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러다 문득 온라인상에서 아이 교육에 열정적인


엄마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심장이 뛴다.


열정을 회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 엄마들이 이야기하는 걸 유심히 보니


아이들 영어 프로그램 이야기였다.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이것이었다.


'월팸'

(???!!!)



그동안 스팸은 많이 먹어봤는데,


스팸 짝퉁인가?


웬 유아 영어 이야기에 월팸?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엄마들의 이야기에


검색을 해봤다.


월팸=디즈니 월드 패밀리의 약칭이다.

(World family english)



영유아기 영어 실력을 향상해 준다는 프로그램.


디즈니 월드 패밀리 잉글리시를 줄여서


월팸이라고 부른 것이다.



월팸에는 여러 패키지가 있는데,


풀 패키지를 사면 1,000만 원이란다.



일명 미키와 친구들 세트.


줄여서 미친 세트라고 부른단다.

(욕 아니고, 진짜 저렇게 부른다.)

(정말 미친 가격이다.)



영어 cd, dvd, 카드, 책 등이 1,000만 원이고


여기에 별도로 매달 회원 유지비가 붙는다.


추가로 월팸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예를 들면 원어민 영상통화나


원어민과 함께 즐기는 행사 참여비는 별도다.


(자본주의 돈 파티)


(켁)







조용히 컴퓨터 화면을 껐다.


우리 형편에 아이들 프로그램에 돈 천만 원은 사치다.

(부부상담에는 돈 천만 원 썼음 주의)

(쿨럭)



하루


이틀


삼일



.

.

.

.



일주일


.

.

.

.



한 달



시간이 흘러도 월팸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 프로그램을 샀다.


사긴 샀는데, 중고로 말이다.

(중고도 3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지난 편에서 온라인상 모인 엄마들 모임


많은 엄마들이 월팸을 가지고 있었다.




유아 영어프로그램에 1,000만 원 가까이 쓸 수 있는


경제력 탄탄한 엄마들의 모임.





그 안에서 초반에는 육아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면


아이들이 점점 크면서


교육 이야기를 주로 하곤 했는데,


엄마들의 교육열만큼이나


아이들의 지적 능력도 탁월해 보였다.







엄마들은 아이의 발달에 따라


교육 로드맵을 서로 공유했다.



다양한 학습 업체와 교구들이 매일 등장했다.


핀덴, 오르다, 츄피...


그러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학습지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아직 기저귀를 찬 아이들이


한글을 읽고 숫자를 쓰고


심지어는 학습지도 풀어냈다.


외국어 발화는 기본이다.




체육이면 체육,


미술이면 미술,


음악이면 음악.




엄마들은 본인 아이에 맞게


끊임없이 교육을 시켰고,


아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영어 프로그램이 비쌌기에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고자 했던


단순한 내 생각과는 달리


경제력이 있는 엄마들은 영어뿐만 아니라


언어, 수학, 한자, 예체능 등을


유아기부터 탄탄하게 잡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유아 사교육에 대한 이미지가


아이는 원치 않는데 엄마가 강요를 해서


이뤄진다는 편견과는 다르게


아이의 관심사와 흥미를 옆에서 관찰하며


적재적소에 사교육을 배치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엄마 욕심만으로 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요즘 7세 고시가 이슈화 된 이후로,


7세 고시는 너무 과하다,


그걸 준비하기 위한 4세 고시는 더 과하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속내를 옆에서 지켜보니


부모의 욕심도 여전히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자녀들의 관심사를 지켜보고


아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주고


내 아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7세 고시, 4세 고시라는 말에서 오는 거부감으로


아이의 행복을 바라고


진정으로 자녀의 성공을 원하는


소위 '경제력 있고 열정 넘치는' 엄마들의 노력을


곡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길에서 '영어 유치원'을 두고


엄마들끼리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봤다.


한참 논쟁(?)을 이어가던 중,


영유 찬성파 엄마가 한마디 던졌다.



"솔직하게 말해봐요 우리"

(???!!)



"영어유치원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드는데,


이게 만약에 국공립으로 전환이 된다 하면


그래도 안 보낼 거예요?"




한 순간에 시장통처럼 떠들어대던 엄마들이


기도실에라도 들어온 듯 조용해졌다.




그 정적을 깨고 영유 반대파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럼 보내야지~"



어쩌면 가치관보다 경제적 여건에 의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교육 방향을 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반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사용할 이유는 없어 보이지만


영어유치원이나 일반 사립 유치원의 좋은 프로그램들을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일반 어린이집에도 보급(?) 되었으면 한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교육 격차가


유아기 때부터 생길 수는 있지만,


적어도 일반 어린이집의 보육 환경이


일반 사교육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지는 일이 없길 바라본다.



https://brunch.co.kr/@glowup/42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