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 조절
평소처럼 체크인을 진행했는데도 오래 걸린다고 트집을 잡거나, 밤늦게 체크인했으니 체크아웃도 늦게 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높은 확률로 힘들었던 고객들이 있다.
바로 취한 고객들.
기억나는 건 하필 또 객실 키와 관련된 경험이다.
일행과 객실 2개를 예약한 고객은 저녁쯤 호텔로 전화하여 몇 호인데 객실키가 안된다고 당장 올라오라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렸다. 목소리는 이미 엄청 취해있었다.
원래는 프런트에서 고객 정보를 확인하고 추가 객실 키를 제공해야 했지만, 다시 전화해도 받지 않던 이분들은 내가 체크인을 받아 얼굴을 기억했기에 우선 추가 키를 들고 올라갔다.
일행과 함께 객실 앞에 있던 고객은 안 열리는걸 내게 확인시켜 주듯 몇 번을 보여주었고,
다 보고 난 후에야 내가 가져간 키로 터치하니 객실문이 열렸다.
추가발급된 키를 고객에게 전달하면서 작동이 안 된 키는 내려가서 확인해 보겠다고 하는데...
호텔의 결함(?)으로 본인이 오랫동안 못 들어가고 서있었다며, 이 문제의 키는 바닥에 둘 테니 나에게 주워서 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짜 바닥에 키를 내려놓았다.
드라마라면 누가 봐도 악역이었다. 누가 봐도 신데렐라의 언니들이었고 놀부였다.
내 손에 줄 수도 있었는데 본인이 불편함을 겪었으니 나도 불편함을 겪어라 나름의 화풀이였던 것이다.
나는 고객의 눈을 바라봤고 이미 풀릴 대로 풀린 눈이었기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찰나,
옆에 일행분이 놀라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그 키를 주워서 나에게 주었다.
내려가 키를 확인했더니 일행 고객 객실의 키였다. 서로의 객실을 왔다 갔다 하다가 섞인 것이다.
일행 객실의 키랑 섞이는 일은 정말 자주 있는 일이지만, 처음 겪는 결말이라 솔직히 상처받았다.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게 취한 고객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취한 고객만 오면 유난히 긴장하고 뚝딱이가 되었고, 뚝딱거리는 나를 보던 동료 직원이 하루는 취한 고객은 어차피 체크아웃할 땐 아무렇지 않게 가는데 왜 혼자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와 그 직원의 받아들임이 뭔가 다르다는 걸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똑같은 업무를 하는데 왜 다른 건지, 내가 지금 놓치고 있는 게 뭘까 고민해 보았다.
당시의 난 내가 서비스직에서 일하고 있으니 모든 고객에겐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맡은 바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같아 마음이 불편했고, 그래서 라디오로 치면 매번 볼륨 100으로 업무를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100의 볼륨으로 대해도 빛의 굴절 실험처럼 70은 그대로 튕겨 나와 고객에게 100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에겐 취한 고객 말고도 수많은 고객들을 위한 힘이 남아있어야 했기에 나의 서비스마인드를 사람과 상황에 맞춰 볼륨을 높였다 내렸다 할 필요가 있다는 걸 그제야 인지하게 되었다.
동료직원이 말한 것처럼 취한 고객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전날 아무리 난리를 쳐도 체크아웃을 할 때는 세상 평범하게 체크아웃을 한다. 취했을 때와 다르게 친절하고 젠틀한 고객을 붙잡고 나의 상한 감정을 다시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기에
그 후부터는 취한 고객에게는 죄송하지만 나는 친절함을 30프로 줄여서 응대하기 시작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퉁명스럽게 고객을 대하는 게 아닌, 짧지만 정중하게 대했고
30으로 내렸던 볼륨은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다시 70을 채워서 고객들을 대하며 조절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나는,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만나게 될 많은 고객들을 위해 서비스 제공에도 요령이 필요하다는 걸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