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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강우 Nov 04. 2024

2024년 아르코창작기금

처마의 방식

처마의 방식



하늘이 허전할 때 문득 생각나는 존재다 처마는 

지은 지 너무 오래된 다닥다닥 어깨가 붙은 집들

언젠가 옆집 친구 여동생에게 들창문으로 쪽지를 건넬 때

볕이 드는 그 아이의 얼굴도 이쪽 그늘 반은 가져갔다 

사랑을 잃고나서 이유 없이 먼산을 볼 때마다    

머리 위에 처마를 드리우던 꽃들은 또 어땠나

피는 자세와 떨어지는 자세의 차이점에 대해     

낙화한 자리의 그늘이 실은 빛의 구간이라는 것    

 

서까래도 처마도 없는 풍경에 발맞춰 마음들도

그늘이 없는 관계를 선호하게 되었다   

고개를 들면 때없이 추락하는 표정도 애써 환하다 

에두르기를 좋아하는 낭만은 뒷주머니에 구겨진

모자챙이 되어 가끔 식탁을 닦곤 한다   

봤듯이 처마 또한 탈부착이 가능한 눈치가 되었다   

   

품고 있던 사표를 찢은 것도 처마 아래서였다

장대비쯤은 그리운 노랫가락으로 변주하는 함석 처마

내 가난을 오래 보듬어 준 애인처럼 정겨웠다  

거세게 쏟아지는 가시 돋친 말마저 꽃무늬 빗방울로  

기운 만큼의 깊이로 속정을 그려 보이던 처마 같은 사람  

내가 오늘 다 젖어 어느 허름한 처마 아래 선 까닭은

오래 전 내 발끝에 리듬을 맞추던 비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마와 이마를 맞대면 살가운 웃음이 생기는 것처럼 

계단을 올라오던 노숙자가 문득 허리를 구부릴 때   

계단에 닿을 듯한 이마 틈새로 보이는 풀잎 하나  

우린 언제든 펼칠 수 있는 처마를 가졌지만 귀찮아서

혹은 규격이 다르다고 한 발짝 비켜선다. 눈맞춤을 피하는 건

처마 아래에서 함께 비를 피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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