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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강우 Nov 04. 2024

2024년 아르코창작기금

서랍의 내력

서랍의 내력        


        

사용빈도가 높은 서랍은 쉽게 닫힌다  

규모가 큰 서랍은 모서리도 꺼리지 않는다 

자동으로 여닫히는 쇼핑센터는 하루 수백 번

콧대가 경사진 수납처에 불만사항을 의뢰한다

서비스의 광택을 강조하는 직원은      

의외로 우기雨期의 상담을 선호한다

건식의 약관은 습식의 버릇을 수납하기 쉽다

이따금 막무가내 흐름에 떠밀려간 

후줄근한 뒷덜미 덜그럭, 잡혀 나온다      


광장은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한꺼번에 열린 서랍에서 쏟아져나온

들뜬 마음들이 종횡으로 열을 짓는다

신호에 맞춰 새로운 서랍에 담긴다 

안내하는 손잡이의 모양도 다르다 

한 가지 용도로 인솔하는 건 시간이다

같은 자리에서 뜨거웠던 말들이

어떤 시간의 구령에는 차갑게 식어 있다

호환되지 않는 말들로 손잡이가 빠진다

그런 이유로 함부로 서랍을 엎을 때

제 몫을 잃은 마음들 한통속이 된다 

갈피 잡을 수 없게 된다      


사용빈도가 높은 서랍은 쉽게 열린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서랍이 있다

덜컥, 하고 왼쪽이 열릴 때 텅,

오른쪽이 열리는 헤무른 습관이 있다      


그 여자의 서랍은 자꾸만 헐거워졌다 

맨 처음 배식차가 굴러가면서 서랍이 열렸다 

모텔 침대시트가 끼였을 땐 삐걱 소리가 났다 

봉제 인형이 쌓이고 통조림이 쏟아지고

노래방 탬버린이 비명을 지를 즈음   

서랍의 도르래는 달아나고 없었다

어린 아들의 울음소리가 굴러다녔다 

그 여자가 납골당의 서랍으로 들어가고서야 

모든 서랍이 닫혔다 아니, 열렸다  

쇼핑센터가 서랍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해졌다  

롤러스케이트를 탄 아들이 신나게 

광장으로 달려가는 것도 문제없었다  

오직 여자에게만 열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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