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가계
초록의 가계(家系)
집 또한 손길이 필요한 몸이라고 들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척추뼈가 허술해졌다
때 없는 웃음도 곡절 없는 울음도
혹은 자세를 유지하는 근육이거나 힘줄이었음을
골다공증이 자양분의 손실에 있다면
바람이 드나드는 빈집의 방들은
목이 쉰 성대인 셈이다
슬며시 낮잠을 청하는 들짐승들이나
숫제 한 세거지(世居地)를 장만한 명아주에게도
쪽마루가 들려줄 이야기는 마냥 고루해서
오늘은 슬하의 길고양이가 하품으로 대독한다
이야기는 고양이 수염처럼 짧지만
하긴 별과 별 사이의 거리도 한 눈금이다
함석지붕은 지상의 일을 눌러쓴 모자처럼 보인다
붉게 녹이 슨 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던 집주인 사내
진도가 안 나가는 식솔을 거느리고 도시로 떠난 뒤
세간을 대체한 건 먼지의 필기도구들이다
여백의 몸은 총총 별들의 책상이 되었다
새 주소 기입란에 닭벼슬꽃을 이식할 순 없지
마음이 가닿지 않는 우편 행낭이 아득할 때
집은 그때부터 자신의 몸을 우체통으로 이용했다
부쳐도 가닿지 않는 서신이 쌓인다
붉은 인주가 묻어나는 처마를
저 박새, 아까부터 자꾸만 쪼아대는 게
아무래도 모자마저 벗기려는 심산이다
어쩌면 내용증명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번번이 반송되는 녹가루의 마음은
봉투를 잃어버린 바짝 여윈 초록의 가계(家系)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