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백도 못 벌면서 월 천을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
최근에 충격적인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실 충격적이라기보다 신선한 영상이었다.
미국의 어느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 영상이었는데
26분 남짓한 강의를 보고 여러 가지 느낀 바가 많았다.
그 느낀 점을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한다.
오늘 난 유튜브를 검색하다가 엄청난 것을 보고 말았다. 처음엔 그저 미국 어느 노교수의 평범한 강의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국과도 꽤 인연이 깊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셈 리처드였다.
나중에 영상이 끝나고 샘 리처드에 대해 검색해 보니, 한국에 관해 굉장히 관심이 많은 교수였다. 심지어 건국도 문화콘텐츠학과의 석좌 교수라고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의 지대한 한국 사랑이라든가, 경력에 관해서가 아니다. 그가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 그리고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한다.
금수저, 흙수저가 사람의 평생을 좌우한다
교수는 말한다.
“이 안에 있는 흑인 중에 자기가 제일 잘 산다고 생각하는 학생?”
영상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거 인종차별적인 발언 아니야? 아니, 그보다 ‘여기서 제일 잘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학생, 나와 보세요.’라고 말한다고 진짜 나와?’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영상은 내 예상을 뒤엎었다. 진짜로, 어느 흑인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 흑인은 차가 두 대 있으며 화장실이 6개 딸린 맨션에서 산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럼, 본인이 이 안에서 제일 못 산다고 생각하는 흑인 학생?”
그러자 어디선가 예쁘장한 흑인 여학생이 나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홈리스 생활도 해봤고, 국가의 지원도 받아봤으며, 친척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자신의 불우한 과거를 짧게 소개했다. 교수는 그녀에게 어떠한 동정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사회 실험 참가자 중 한 사람이었을 뿐이므로.
이번엔 교수가 또 좌중을 향해 물었다.
“본인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흑인 학생?”
그러자 중산층에서 약간 하위 레벨(교수가 그렇게 정했다.)과 중산층 흑인 학생이 나왔다.
교수는 가장 빈민층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학생을 가장 아래에 세우고, 중산층 두 명을 몇 계단 떨어진 위에, 그리고 본인을 부유한 흑인이라고 소개한 학생을 가장 꼭대기에 세웠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여러분은 노력하면 뭐든 다 된다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여학생, 한 칸 위로 올라가 보실까요?”
빈민층 여학생이 한 계단 위로 올라가자, 교수는 나머지 학생들에게도 한 계단씩 위로 올라가라고 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 이 여학생은 자신의 가난을 벗기 위해 많이 노력해서 한 계단을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학생 역시 한 계단씩 올라왔죠? 결국, 이런 겁니다. 가장 빈민층도 열심히 살지만, 상류층이라고 해서 쉬고 있지만은 않죠.”
여기까지 강의를 보았을 때,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의 말엔 틀린 점이 없었다.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동안, 부자 또한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니까. 사람은 자기 밑을 보지 않고, 더 위를 보기 때문에 부자는 마땅히 더 부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샘 리처드는 또 말한다. 앞에 나와 있는 백인 여학생에게 가장 하층민 흑인 여학생에게 해줄 말이 없느냐고.
백인 여학생은 상대에게 무례해지길 원치 않기 때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말한다.
“노력한다고 상류층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분명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교수는 차갑게 말한다.
“지금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도 그 말이 나옵니까?”
물론, 난 이 영상을 얼마 전에 보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들의 대화를 옮겨 쓰지는 못했다. 하지만 샘 리처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부는 타고날 때부터 불균형’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불균형을 타파하고자 하지만 웬만해선 견고한 성벽과도 같은 계급을 무너뜨리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강의를 듣는 이들이 전부 대학생인 것을 고려해 볼 때, 결국 그들의 부는 부모의 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었다.
이와 같은 샘 리처드의 강의는 그렇게까지 특별하진 않다. 누구나 아는 내용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핵심적인 내용을 우리는 일부러 외면하려고 할 때가 많다.
누군가가 ‘부는 대물림돼. 아무리 노력해 봐도 소용없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이에 반기를 들며 ‘아니야. 노력하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샘 리처드 강의를 본다면 이런 말은 쏙 들어갈 것이다. 그의 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난한 자가 노력하는 만큼 부자도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부자는 여러 가지 옵션이 많다. 부동산, 주식, 코인 등등. 어느 연예인이 30억짜리 건물을 100억으로 만들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느니만큼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기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되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아무나 못 되는 ‘월 천 작가’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작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유튜브 강의 동영상을 보다가도 내 머릿속엔 자연스럽게 작가들의 계층 구조가 떠올랐다.
작가들 사이에서 으레 하는 말로 ‘월 천 작가’라는 말이 있다. ‘한 달에 천만 원의 수익을 내는 작가’를 말한다. 한 달에 천만 원 수익이면 일 년에 연봉 1억 2천만 원이다. 절대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제 막 작가가 된 신인 작가나 지망생들은 ‘월 천 작가’가 될 거라며 입버릇처럼 말한다.
따지고 보면 ‘월 천 작가’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내가 건너 건너 아는 작가만 하더라도 우연히 쓴 첫 작품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거나, 시대를 잘 만나서 대박을 터뜨린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건 웹소설 시장이 한창 발전하던 시기에 가능했을 뿐, 현재는 웹소설 업계가 정체기인 데다가 작가들이 너무 많아졌으므로 ‘대박’을 터뜨리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즉, ‘월 천 작가’가 되기 더 어렵고 까다로워졌단 말이다.
이쯤에서 샘 리처드의 강의를 차용해 보자.
계단의 가장 밑바닥은 소설가 지망생, 그리고 몇 칸 떨어진 위에는 중간 정도 버는 작가, 그리고 가장 상단에는 우리가 소위 ‘네임드’라 부르는 1년에 몇억씩 버는 작가를 세워둔다고 치자.
소설가 지망생이 열심히 노력해서 한 작품을 겨우 출간해서 한 계단을 올라왔다. 그러면 중간 레벨 소설가도 열심히 노력해서 작품을 만들고, 네임드 작가도 쉬지 않고 소설을 출간해서 한 계단을 올라간다. 세 명 다 한 계단씩 올라오는 것이다. 결국, 격차는 영원히 좁아지지 않게 된다.
나는 이 글을 소설가 지망생을 좌절시키려고 쓰는 게 아니다. 그저,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는 마음에서 쓰는 것이다. 내가 일 년에 소설을 써낸 만큼, 나보다 더 돈을 많이 버는 소설가 또한 끊임없이 소설을 쓴다는 걸 상기한다면, 적어도 순진무구하게 ‘월 천 작가 돼야지’라고 함부로 말할 순 없을 테니까. 심지어 ‘월 천 작가가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예비 작가들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