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미래: 에너지 전환[1]
수축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동화가 고도화될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부머 은퇴 본격화로 촉발될 수축사회에 질서 있게 적응하는 것이 한국경제 지속성장의 주요 과제이다. 출생률 하락 반전, 노동 공급 감소 충격 완화(여성, 고령자, 외국인 등의 경제활동 참가 유인) 등을 위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해당 방안들이 소기의 효과를 거두는 경우 축소사회 진입 시점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동 투입 감소에 따른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자본 투입 증가를 모색할 수 있다. 새로운 자본 투입은 자동화를 수반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화는 AI(인공지능)와 밀접하게 연계되면서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는 인간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을 기계·소프트웨어 등을 통해 자동으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자동화는 공장 기계, 로봇 등을 사용하여 단순한 육체적 작업을 대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데이터 처리, 회계, 고객 서비스 등)로 확산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AI는 보다 복잡한 작업과 의사결정을 처리하는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자동화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킬 수 있다. AI가 자동화의 지능적 엔진으로 기능함으로써, 과거에는 사람이 해야 했던 복잡하고 창의적인 의사결정도 자동화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자동화가 AI와 융합됨에 따라 기업의 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 효율성 증대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관련 전력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다.
AI 모델(머신러닝, 딥러닝 등)의 훈련·운영은 막대한 연산 자원을 필요로 하며, 이는 전력 소비와 직결된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인으로 전력 수요가 커질 수 있다. 첫째,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 소비이다. AI 모델의 훈련·운영을 위한 연산 작업은 데이터 센터에서 이루어진다. 데이터 센터가 운영하는 서버,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기 위한 냉각 시스템,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분석하는 데 필요한 스토리지, 네트워크 인프라 등이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둘째, AI 훈련 과정의 전력 소비이다. 대규모 AI 모델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장비(그래픽 처리 장치, 텐서 처리 장치 등)는 일반 CPU보다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대형 언어 모델, 이미지 생성 모델 등의 훈련에는 많은 GPU가 사용되며, 해당 훈련의 기간도 길기 때문에 전력 소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셋째, AI 추론 과정의 전력 소비이다. AI 시스템이 훈련된 이후 실제로 동작하는 추론 과정(챗봇, 추천 시스템, 자율주행차 등)에서도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특히 실시간 처리를 요구하는 시스템은 지속적으로 연산을 수행하므로 상당한 전력 소모가 발생한다.
급증하는 AI 관련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공급체계 구축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AI의 전력 소모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다수의 연구자·기업들이 에너지 효율 개선, 재생에너지 활용 등을 통해 AI의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AI 모델, 하드웨어 등의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하는 노력이 그 예이다. AI가 보다 많은 분야에 도입됨에 따라, 국민경제 전체의 전력 수요도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고도화된 AI 서비스(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의료시스템 등)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할 것이므로, 해당 서비스가 전력 인프라에 주는 부담이 클 수 있다. 향후 AI 기반 자동화 확산, 관련 에너지 수요 급증 등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 시급한 과제이다.
한국은 국내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여 대외 의존도가 높다.
한국은 필요 에너지를 수입을 통해 확보하는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산업화에 수반되는 에너지 수요에 대응하여 화석연료(석탄, 석유, 액화천연가스)를 수입해 온 것이다. 지경학적 위기에 따른 에너지 가격 변동성 확대 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에너지원 선택에 있어 우선적인 고려사항은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이다. 즉 안정적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안보가 중요한 정책 목표인 상황이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의 수급 불균형, 지정학적 위기 등으로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 공공부문이 그 충격을 흡수해 왔다. 이러한 에너지 수급 시스템은 한국경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존의 정책 목표인 에너지 안보는 지속적으로 강화해 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 국제질서 강화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탄소중립 국제질서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완화하고 지속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다양한 요소(배출량 감축, 탄소 상쇄, 기술과 혁신, 정책 및 규제, 대중의 인식과 참여, 국제 협력)와 국가, 기업, 개인의 공동 노력을 포함한다. 기존 에너지 시스템은 수입에 의존하는 공급과 화석연료 중심 산업 수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화석에너지 중심의 현실과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하는 당위가 충돌하면서 국제질서 차원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화석에너지에서 무탄소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은 성장, 고용, 물가, 소득 등 거시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에너지 정책도 복합적 목표(에너지 안보, 탄소중립, 경제성장 지원 등)를 달성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주요국 정부는 탄소중립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정책과 규제를 제정하고 있다.
탄소 가격 메커니즘(탄소세 또는 배출권 거래제),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보조금, 특정 부문의 배출량 감축 의무 등이 그 예이다. 더 나아가 글로벌 탄소중립을 목표로 전 세계적인 협력과 조정이 시도되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국가 간의 대화와 협상을 촉진하여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서 2015년 제21차 당사국총회(COP21, 파리)에서 파리 협정(Paris Agreement)이 채택되었다. 동 협정은 각국이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기후 행동에 협력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글로벌 탄소중립 질서는 에너지 전환과 관련성이 높다.
에너지 전환이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친환경 기술 촉진, 신재생에너지로의 이동, 에너지 효율성 향상 등이 그 토대이다. 에너지 저장 기술, 그리드 혁신,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 축소,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등도 중요한 수단이다. 한국의 경우, 에너지 공급의 대외 의존도가 높고 화석 에너지에 대한 수요 비중이 높다. 그로 인하여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분리하여 추진하기 어렵고 두 목표 사이의 상호작용을 감안한 종합적 에너지 전환 전략이 요청된다. 탄소 에너지 관련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동 에너지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요청된다. 이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무탄소 에너지 관련 부존자원이 제한적이고 사회적 수용성이 낮은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그렇지 못하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에너지 안보 관점에서도 경제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
질서 있는 에너지 전환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국내 부존자원이 제한적인 주요 에너지원의 경우 공급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에너지원에 치우치면, 대외 가격 변동, 공급 교란 등에 따른 충격에 노출된다. 반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초기 투자와 기존 산업의 변화에 대한 부담을 수반한다. 그로 인하여 정책 일관성 유지, 이해관계자들 사이 이견 조율 등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외부 충격에 따라 에너지 전환 전략이 흔들릴 위험이 크다.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하면 에너지 안보 강화, 탄소중립 이행,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 등을 달성할 수 있을까? 질서 있는 에너지 전환 전략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에너지 전환의 방향, 속도, 기술 지원 등에 대한 포괄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전제로서 질서 있는 전환 전략 수립을 뒷받침할 수 있는 비용-편익에 대한 기반 정보가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