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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질(疫疾: 천연두)

단편소설 <자타국의 마지막 군주>

by 장웅진

* 註: 자타국(子他國)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었던 고대 가야의 소국입니다.




자타국이 망하고, 새 한기가 어머니, 유모와 함께 금성으로 이주한 지 1년이 되던 해였다. 서라벌 최초의 절인 대왕흥륜사에서는 왕을 위한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법운왕의 부인인 사도왕후(思道王后)가 개최한 법회였다.


왕을 위해 왕후가 개최한 법회라 서라벌에 살던 고관대작들이 죄 모였다. 그래서 대왕흥륜사 내부에서는 한바탕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물론 이 와중에 잘도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인사를 나누는 용한 자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아이고, 대나마(大奈麻) 아니십니까? 소인 대사(大舍)입니다!”


“어, 그래! 별고 없는가?”


“예, 나리께서 잘 봐주신 덕에 소인의 집이야 별 일이 없습죠. 헌데… 듣자하니 손녀 아기씨께서 편찮으시다던데….”


“그렇네. 온 집안에 역질(疫疾: 천연두)이 돌아서 말이야. 다행히 새로 지은 구지택(仇知宅: 가을별장)에 피신시킬 수는 있었네.”


“아이고, 정말 다행이십니다, 나리! 그러고 보니 전 자타국 한기의 처도 역질로 죽었다던데 말이죠. 얼마 전에요.”


“그러게. 아이도 있는 젊은 과부가 역질로 죽다니, 쯧쯧쯧….”


제 손녀가 같은 병을 앓아서인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대나마는 저 멀리 법당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렸다.


“허어, 저기 왕후 폐하 곁에 서 있는 여인이 데리고 있는 아이가… 그 고아가 된 옛 한기 아기씨가 아닙니까? 쯧쯧쯧…!”


“그렇구먼. 저 여인은 유모인 모양이고. 자타국에서 함께 왔다던…. 왕후 폐하께서 유모를 바꾸지는 않으셨구먼.”


“그만큼 인정이 많으신 분이시잖습니까, 하하하!”


이렇게 신라의 두 벼슬아치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옛 한기 아기씨에겐 들리지 않았다. 너무 멀어서였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헉…, 헉…, 유모, 덥고 목말라. 머리도 아파.”


아기씨가 괴로워하는데도 유모는 왕후의 눈치만 봤다. 이 행사에서 왕후의 눈에 잘 들어야 아기씨도 자신도 편안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판단해서였다.


“조금만 더 참으시옵소서. 왕후 폐하께 의젓한 모습을 보이셔야지요!”


그러나 아기씨의 얼굴에는 수포가 몇 개 솟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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