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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17. 2024

시노부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당선작  <조선  활자공  임오관,  평화를  만들다>


“류도 인쇄공이었습니다. 저희와 함께 폐하께서 하명하신 일을 했죠. 기리시탄(キリシタン: 기독교인) 절의 승려들이 남만(南蠻: 서양)에서 가져온 인쇄용 기계로 책을 만드는 걸 도우며 그 일을 배웠다기에 발탁됐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의 처남은 기리시탄인가?”


쇼군께서 눈을 가늘게 뜨시고 임오관을 바라보셨다. 쇼군께서는 불과 2년 전에 간신히 진압하신 시마바라의 난, 즉 기리시탄들의 난동을 떠올리신 것이다.


임오관도 대답을 올리기 전에 이를 예상했던지 급히 절을 올리며 허둥댔다.


“아, 아니옵니다, 쇼군! 처남은 기리시탄이 아니었습니다! 처남은 남만에서 온 중들이 일본을 떠난 걸 계기로 그 몹쓸 종교를 버렸습니다. 그 엉터리 중들이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무서워서 일본인 신자들을 버리고 떠난 데 실망하고 분노한 탓이었죠. 게다가 류는 말입니다요…, 애당초 기리시탄들이 모시는 신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총 제작 기술 같은 거라도 배워볼 수 있다고 들어서 따라다녔을 뿐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진심으로 믿었기에 따라다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임오관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려가며 입과 배에 힘을 주면서 설명했다.


쇼군께서 임오관의 말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으시는 눈치시라 임오관은 마치 쐐기를 단단히 박으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기리시탄과는 쉽게 연을 끊었다고 시노부에게 말했습니다, 쇼군! 소인이 시노부의 곁에서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노부가 제게 말하길, 처남은 그녀에겐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쇼군께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시자 임오관은 이 말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실은 처남이…, 애당초 기리시탄도 아니고, 기리시탄 절이 보이면 애써 다른 길로 가던 시노부마저 연좌를 당할까 봐 걱정한 듯합니다. 다행히 연좌까지는 안 당하더라도 나라에서 금하는 사악한 걸 믿은 죄인의 가족이라 마을에서 따돌림을 당했겠죠. 그래서 어명이 내리자 기리시탄과의 연을 완전히 끊었으리라고 소인은 추측합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기리시탄은 절이나 신사에서 드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치성을 올린다던데, 처남이 그런 치성을 올리는 걸 소인은 단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쇼군!”


임오관은 처남을 변호하기 위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애처롭게, 그러면서도 말끝마다 힘을 주어 말했다.

이 일본에 잔존한 기리시탄들이 불교식으로 치성을 드린다 하니 임오관의 말이 거짓이거나 임오관도 처남에게 속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쇼군께서는 부처님처럼 온화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보이며 말씀하셨다.


“알겠네, 임오관. 조정에 계신 분들도 신임하시는 자네의 말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차피 자네 주변에 기리시탄들의 주장을 퍼뜨리고 다니는 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도 없으니까. 그런데 왜 자네의 처는 기리시탄이 되지 않았는가?”


쇼군이 하문하시자, 임오관은 이번에도 감히 시녀가 갖다 놓은 새 술병을 들고서 술을 다 들이켠 다음 답을 올렸다.


“시노부가 소인을 만나기 전에 서방을 둘이나 잃었으니까요! 하나는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 나리를 모시다 칼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나리의 명에 따라 탈출했던 같은 마을 사람들이 알려줬다더군요. 오다 노부나가 공 곁을 끝까지 지킨 탓에 함께 불타서 시체도 못 찾았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시바가 일으킨 전란 당시 평양성 전투로 잃었다고 했습니다. 평양성에서 얼어 죽었다고 더불어 종군했던 고향 사람들이 말해줬다더군요.”


“하긴 하시바가 조선을 침공했던 첫해에 극심한 추위로 많은 병사를 잃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헌데 자네 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군. 안타깝구먼.”


쇼군께서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시며 고개를 주억거리시자 임오관은 힘을 내어 말을 이었다.


“시노부는 서방 둘을 연달아 잃자 크게 절망했습니다. 신들도 부처도 없다면서요. 그래서 처남이 기리시탄 승려들에게 잘 보이려고 시노부에게도 기리시탄이 되라 권했을 때도 냉소했다죠. 남만 사람들의 신은 무에 그리 특별하냐면서요. 남만 사람들은 싸움을 안 한다더냐고 따지면서요. 그나마 처남이 시노부더러 자살하면 안 된다고 꾸준히 설득한 덕분에 소인을 만날 때까지 이를 악물고 살았다죠.”


“그런데 시노부가 어찌하여 자네를 새서방으로 맞아들이기로 했는가?”


“그걸 위해 애써주신 분이 바로 후지와라 세이카 나리셨습니다.”


후지와라 세이카 공의 이름을 들으신 쇼군께서 눈을 크게 뜨시고 우렁차게 하문하셨다.


“허어, 후지와라 선생이라면 조선에서 모셔온 성리학자인 강항 선생의 수제자 분을 말하는가?”


“예, 쇼군. 후지와라 세이카 나리는 초대 쇼군(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에 따라 성리학 서적 간행 사업을 진행하신 분이죠.”


“그렇지. 나도 어릴 때 처음 뵈었었지. 조부를 모시고서 말이야. 그 자리에 자네도 있었어!”


이 순간 쇼군은 초대 쇼군께서 가장 총애하신 손자인 ‘다케치요 도련님’으로 되돌아가신 듯했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직접 목격했던 내 눈에서도 감히 눈물이 났기에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쇼군께서 이렇듯 부드러운 분위기를 보여주시자 임오관은 물론 나를 비롯한 동석자들도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원래 ‘죄인’ 임오관을 심문하려고 열렸으며, 임오관도 자신을 도왔던 자들이 참수까지 당한 걸 전해 들었을 테니 자신도 최소 귀양과 같은 중벌을 당하리라 예상했으리라. 그러나 쇼군께서 이렇게 부처님처럼 관대하게 대해주시니 임오관의 입도 그만큼 쉽게 열렸다.


“예, 쇼군. 폐하와 초대 쇼군께서 내리신 명에 따라 조선에서 가져온 책들을 인쇄하여 사무라이 나리들에게 널리 읽히는 대사업을 준비하는 자리였죠. 폐하와 초대 쇼군께서는 일본 전체가 태평성대를 누리려면 사무라이 나리들이 칼을 내려놓고 책을 읽어야 한다고 소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일본 땅에 앞으로 하시바 같은 놈이 안 나올 거라면서요. 예, 그러니까… 그렇게 저희를 독려하셨죠.”


임오관이 눈치껏 잘 말씀드리자 쇼군께서는 초대 쇼군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으시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시며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그래, 조부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시게 했던 분이 바로 후지와라 선생이셨지. 어느 날 후지와라 선생이 강항 선생께 이렇게 여쭈어보셨다고 하네. 왜 조선에서는 백성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왕을 위해 농기구나 죽창이라도 들고서 봉기하느냐고? 이순신이라는 장수는 자신을 의심하고 질투하여 박해한 조선 왕을 위해 몇 안 남은 전선으로 감탄할 만한 승전까지 해낸 이유가 무엇이냐고? 후지와라 선생께선 이 일본의 모든 사무라이들과 학식 있는 자들을 대표해서 강항 선생께 그런 질문을 하신 거야! 그리고 강항 선생의 답이 이러했다지.”


나를 포함해 몇몇은 그 답을 알고 있었어도 쇼군의 말씀을 열심히 경청했다. 불에 구운 오래된 떡처럼 부드러워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에도 시대 일본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는 데 활용했던 "마리아 관음상"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B%A6%AC%EC%95%84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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