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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17. 2024

도쿠가와 이에미츠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당선작  <조선  활자공  임오관,  평화를  만들다>


간에이(寛永) 17년(1640년), 조선으로 몰래 귀국하려던 조선인 인쇄공 임오관을 시모노세키에서 체포했다.


임오관에게서 은자(銀子)를 받고 도움을 주었던 자들은 모두 체포 후 참수를 당했고, 임오관이 지내던 슨푸(시즈오카)에서 시모노세키에 이르는 관문들에 근무하던 관헌들은 엄중한 문책을 당하거나 귀양을 갔다.


주범인 임오관은 쇼군(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어명에 따라 에도성으로 조용히 압송되었다. 조선 조정에 이 사건이 알려지면 두 나라 간에 분쟁이 일어나리라고 쇼군께서 우려하셨기 때문이다. 아울러 쇼군께서는 우리 일본의 귀중한 보물인 임오관을 차마 벌하실 수 없으셔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임오관은 일본에서 산 지 무려 반백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조선 사람처럼 상투를 틀고 흰 무명옷만 고집했다. 임오관의 처조카들과 제자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그의 나이가 곧 팔순이라 고집을 꺾는 걸 포기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임오관이 평소에 귀국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다이칸(代官: 지방관)에게 증언했다.


그리하여 쇼군께서는 직접 임오관을 심문해 임오관의 숨은 의도를 직접 파악하고자 하셨다.


에도성에서는 임오관을 쇼군과 알현시킬 준비의 일환으로 정갈한 조선식 무명옷을 마련하느라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이하는 쇼군의 명에 따라 본 부교(奉行: 막부에서 행정·사무를 담당했던 관리) 곤도 토시오가 임석하여 조선 조정의 사관(史官)이 하듯이 단 한 마디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서 기록한, 쇼군과 임오관의 대화 내용이다.


임오관을 알현하신 쇼군께서는 임오관에게 술과 요리를 하사하시며 꾸짖으셨다. 이때 쇼군의 말투는 마치 아버지의 말씀처럼 엄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대는 과인의 조부(도쿠가와 이에야스)께서 텐카닌(天下人: 일본의 지배자)이 되시기 이전부터 조정과 막부에 봉사했다. 그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았는가? 무엇이 부족하여 이 나라의 법을 어기고 조선으로 은밀히 귀국하고자 하였는가?”


쇼군께서는 임오관을 꾸짖으실 때 위엄을 갖추시되 상당히 부드럽게 하문하셨다. 그 모습은 마치 이 죄악 많은 세상에 임하신 젊은 부처님처럼 자비로워 보였다.


하얀 상투를 튼 임오관은 자기 앞에 놓여있던 술상을 내려다보며 한참 생각하더니 한숨을 길게 쉬며 대답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입니다, 쇼군.”


“죽을 때가 닥친 여우가 고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는…, 그런 건가?”


“그렇습니다, 쇼군.”


쇼군은 임오관의 이 대답에 사색이 되어 물으셨다.


“그대는 중병에라도 걸렸는가?”


“아닙니다. 이 자리에 오기 전에 본 의원이 별 탈 없는 것 같다 했습니다.”


이를 다행이라 여기신 쇼군은 짧게 한숨을 쉬시고 임오관에게 여쭈셨다.


“그럼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고향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는가?”


“소인의 처가 죽었습니다.”


임오관이 이때 보여주고 들려준 표정과 말투는 ‘침통함이란 이런 겁니다!’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젊은 쇼군께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그게 무에 대수냐?’는 투로 되물으셨다.


“처가 죽었지, 자네가 죽게 생긴 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말이야….”


쇼군은 앉은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세우시고 부채를 흔드시며 덧붙이셨다.


“계집은 다시 얻으면 되네!”


나는 임오관의 눈에서 살기(殺氣)가 번뜩이는 걸 분명히 봤다. 하지만 찰나에 벌어진 일이라 차마 쇼군 앞에서 지적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잘못 봤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임오관은 자기 속을 억누르는 것 같은 말투로 쇼군께 아뢰었다.


“시노부는…, 소인의 처는 소인이 이제껏 이 나라에서 산 이유였습니다!”


쇼군께서는 그제야 임오관에게 깊은 사연이 있음을 깨달으신 것 같았다.


“으음, 계속 얘기해 보게.”


임오관은 감히 쇼군 앞에서 제 앞의 술을 병째 들이켠 다음 이야기했다.


“소인의 처는…, 그러니까 시노부는 소인과 처음 만났을 때 과부였습니다. 소인이 폐하의 칙령에 따라 활자를 만들고 인쇄 작업을 할 때 만났죠. 소인들을 위해 밥과 청소와 빨래와 바느질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 고용되었거든요. 아, 높으신 분들이 고용하셨죠.”


임오관이 감히 언급한 ‘폐하’는 고요제이 폐하시다. 고요제이 폐하께서는 분로쿠(文祿) 2년(1593년) 윤9월 21일 측근 니시노토우인 토키요시 공 등 12명에게 조선제 금속 활자로 『고문효경(古文孝經)』을 찍어내라 명하셨다.


이는 폐하께서 가토 기요마사 공이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서 진상했던 조선의 금속 활자에 깊은 관심을 보이셨기에 벌이신 사업이었다.


이에 니시노토우인 공 등은 11월 6일까지 이 과업을 완수하였다.


임오관은 니시노토우인 공 휘하에서 조선식 인쇄 기술을 선보였다. 덕분에 폐하께서 하명하신 과업이 예정보다 신속히 완료되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아시는 쇼군께서는 임오관의 말을 차분히 경청하셨다.


“쇼군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소인은 조선 땅에서 하시바가 일으킨 전란(임진왜란)으로 처자식과 영영 헤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생사조차 모르죠. 소인의 고향에서 어느 노인이 말했답니다. ‘마음의 병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과 많은 시간이 지나는 게 가장 좋은 약이다’라고요.”


쇼군께서 ‘호오!’라고 중얼거리시며 흥미로워하시자 임오관은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소인들은 교토에 보내지기 전에는 개돼지 취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토에 들어간 뒤부터는 대우가 아주 달라지기 시작했죠. 이런 대우는 소인들의 신병이 황실에서 막부로 옮겨지면서 교토에서 슨푸로 온 뒤에도 계속되었고요. 이것이 소인들에게 특별한 기술이 있어서라는 걸 곧 깨달았죠. 특별한 기술이나 재주가 없던 조선 백성들은 계속 개돼지 취급을 당했으니까요.”


임오관은 이렇게 말하면서 연석한 하타모토(旗本: 도쿠가와 막부의 상급 가신)들의 눈치를 봤다.


“여기 있는 자들 중 단 하나도 자네를 해코지할 일이 없을 테니 안심하게.”


쇼군께서 보증하시는 데도 임오관은 슬며시 하타모토들의 눈치를 계속 살피더니, 술 한 잔을 더 마셔 용기를 북돋우고서야 말씀을 올렸다.


“예, 쇼군. 그렇게 말씀하시니 소인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인은 아마 여자를 품어본 지 오래된 탓에 음욕을 품고서 시노부를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허나 후일 소인의 처남이 된 류(竜)가 소인의 이런 몹쓸 마음을 알아보고 수시로 경고를 하더군요. 자기 누나에게 손을 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허, 맹랑한 자로구먼. 감히 조정의 일을 하는 자에게….”


쇼군께서 혀를 차시자 임오관은 대꾸할 말을 찾는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찌푸렸다. 이에 쇼군께서 빙긋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남동생이니까 그런 발언을 할 만하다. 제 누이를 지키는 건 사내의 의무니까. 그런데 그 ‘류’라는 자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


쇼군의 하문에 임오관은 잠시 망설이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을 올렸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고문효경> https://kotobank.jp/word/%E5%8B%85%E7%89%88-98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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