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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17. 2024

강항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당선작  <조선  활자공  임오관,  평화를  만들다>


“흠! 강항 선생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지. 조선 백성들은 철이 들기 전부터 이런 교육을 받는다고 말이야. 왕을 대하기를 제 아비를 대하듯 하라든가, 공자의 말씀에 따라 왕과 신하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따르라고 말일세. 이를 가르치기 위해 조정에서 명나라의 책들을 수입해 대량 인쇄한 뒤 각 지방에 내려 보내 우리의 사무라이라 할 수 있는 양반들을 중심으로 백성들을 학습시킨다고도 하셨다지.”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쇼군의 이렇듯 드높은 지식에 감탄했고, 그 마음을 표정으로 정직하게 드러냈다.


이를 한참 즐기신 쇼군께서는 한쪽 무릎을 곧추 세우시더니 임오관을 지그시 바라보신 다음 말씀을 이으셨다.


“그러고 보니 자네의 인생 역경을 들어본 적이 없어. 분로쿠·게이초의 역(文祿·慶長の役: 임진왜란) 이전부터, 그러니까 자네가 조선에 살 때의 일부터 말해보도록 하게. ‘조선 백성 임오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말이지.”


쇼군의 어명에 임오관은 곤란한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으음, 쇼군, 말씀을 드리기 전에 청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말해보게.”


“술 한 병만 더 마시게 해주십쇼.”


“핫하하! 얼마든지 마시게!”


쇼군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시녀들더러 술 여러 병을 임오관 앞에 더 두게 하셨다. 임오관이 또 병째로 목을 축인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선에서 소인의 집은 대대로 인쇄 일을 하며 먹고 살았습니다. 소인이 듣기로는 전조(前朝: 고려) 말엽에 온 나라가 몽고 놈들한테 털리면서 나락이 되었다죠. 온 나라에 죽음과 질병과 굶주림이 만연했다나요.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쳐들어왔던 때처럼 말이죠, 그때 저희 조상님께서 먹고 살기 위해 동소(銅所)에 들어가시면서 저희 집은 인쇄 일로 먹고 살기 시작했죠.”


“동소라면 구리를 다루는 곳인가?”


“예, 쇼군. 구리를 캐고 제련하여 제품까지 만드는 곳입니다. 절간의 종도 만들고, 유기그릇도 만들고, 화포도 만들고요. 구리를 아연, 주석, 납, 철 등 다른 금속들과 함께 녹여 부어 말이죠. 그래서 누군가가 구리로 활자를 만들 생각도 했다더군요.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이 바로 ‘묘덕’이라는 스님일 거라고 하셨습니다.”


“호오! 묘덕은 학식이 많은 승려였나?”


쇼군의 하문에 임오관은 오른손으로 턱을 집고서 한참 곰곰이 생각하는 자세를 취했다. 아마 조부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말씀이 묘덕 스님은 비구니라고 하셨죠.”


“비구니? 여승(女僧) 주제에 사내들보다 뛰어난 지혜와 학식을 갖췄구먼!”


쇼군이 제 나라의 여승을 칭찬해 주시니 임오관은 술김에 신이 나서 더욱 열심히 입을 놀렸다.


“그런 거 같습니다, 쇼군. 그러고 보면 말이지요, 여자들 중에도 지혜로운 이가 많습니다. 이런 소리 하는 소인이 팔불출 같겠습니다만, 시노부 또한 한때는 마을 제일의 미녀인 데다 죽을 때까지 꾀주머니라는 말을 듣고 살았지요, 헤헤헤!”


임오관은 이날 쇼군을 알현한 이래 처음으로 넉살 좋게 웃었다.


모든 하타모토(旗本: 도쿠가와 막부의 상급 가신)가 크게 놀라워했고, 쇼군께서도 무릎을 탁 치시며 박장대소를 하셨다.


이에 하타모토들도 따라서 한참 대소했다.


하타모토들의 웃음이 잦아들자 쇼군께서는 임오관에게 고개를 주억거려 보이심으로써 그가 말을 계속하게 하셨다.


“그런데 말입니다. 소인 아비의 윗사람이었던 자가 말하기를, 묘덕 스님은 일반 사찰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사용하신 분이고, 그 전에 전조의 조정이 중원(中原)에서 들여온 각종 서적을 학자들에게 보급하려고 금속활자를 고안한 걸로 안다고 했죠. 그러니까 어떤 학자나 기관에서 무슨 책이 몇 부 필요하다고 하면 그 책을 그냥 내어주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활자로 활판을 짜서 찍어내 줬다더군요. 온 나라에 널리 보급해야 할 책도 금속활자로 똑같이 찍어내 변방까지 보냈고요.”


“허어! 이는 고요제이 폐하께서 자네와 같은 인쇄공들에게 사업을 명하셨던 이유를 생각나게 하는구나. 고요제이 폐하께서는 역대 폐하들께서 수집하시고 궁궐의 석거각(石渠閣)과 천록각(天禄閣) 등에 보관하신 책들을 저대로 계속 놔두는 건 보물을 땅속에 묻어두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셨지. 게다가 금은보화와 달리, 책은 오래 두면 상하기도 하고.”


“맞습니다. 습기와 열기가 종이에는 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느 하타모토의 말에 쇼군도 고개를 끄덕여주신 다음 말씀을 이으셨다.


“하지만 사람이 책을 일일이 한 권씩 필사를 하는 건 한 세월이 걸릴 일이지. 필사 시간을 줄이겠다며 꼭 들어가야 할 내용을 빼기도 하고,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용을 손보기도 하지. 그래서 조정에서는 크게 곤란해 하신 바다. 마침 명나라에서 온 상인들이나 학자들, 전쟁 전에 조선에서 쓰시마를 거쳐 온 공장(工匠: 기술자)들이 목판이나 목활자로 인쇄하는 법을 알려줬으나, 몇 부 인쇄하고 나면 활자가 망가져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지.”


쇼군께서 말을 끊고 혀를 차시자 임오관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건 저 빌어먹을 목활자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쇼군! 더군다나 말이죠! 끄억! 꺽! 죄송합니다! 아,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몇 만 개나 되는 글자를 한 자당 여러 개씩 만들어야 하니까 막대한 목재가 드는 데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깎는 게 보통 일도 아니고요. 그런 개고생을 해가며 만든 걸 고작 몇 번 써먹고선 모조리 땔감으로 써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요, 쇼군?”


몸속에서 술이 돌아서인지 임오관은 감히 쇼군 앞에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여러 하타모토들이 이런 임오관을 제지하려 했으나 쇼군께서는 손을 들어 올리시며 그들을 제지하셨다. 어쩐지 당신께서 아시고자 하는 걸 임오관이 술술 불고 있다고 여기시는 것 같았다. 지식을 갈구하시는 쇼군께서는 임오관처럼 천한 백성도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면 이렇듯 관심을 보여주셨다.


이를 알 리 없을 임오관은 술로 목을 축여가며 청산유수처럼 떠들었다.


“목판이야 한번 잘 만들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야 있죠. 하지만 그토록 잘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요. 저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던 전조의 『팔만대장경』만 하더라도 제작에 수십 년이 걸렸다더군요. 목판을 준비하는 시간이 그중 절반 이상을 잡아먹었고요. 저 많은 목판들을 보관하는 데 쓸 건물도 따로 지어야 했다더군요. 보관을 잘못하면 목판이 습기와 열기로 망가져서 못쓰게 되니까요.”


팔만대장경이 언급되자 역시나 불심(佛心)이 깊은 몇몇 하타모토들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쇼군과 임오관의 대화는 오직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됐기에 『팔만대장경』의 내용이라든가, 그게 왜 일본에 필요한지는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임오관은 술기운에 더해 쇼군께서 추어주시니, 그래서 아무도 자기 말을 끊는 자가 없으니 시나브로 더욱 신이 나서 격렬하게 떠들어댔다.


“그에 비해 금속활자는 말입니다, 쇼군! 한번 잘 만들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계속 써먹을 수 있습니다! 예, 그야말로 수백 년간 말이지요! 종이와 먹을 계속 대줄 수 있고, 책을 원하시는 분들이 끊이지 않고 존재한다면 말이지요! 『팔만대장경』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보관할 필요도 없습니다. 책을 다 만들고 나면 활판을 풀어도 무방하죠. 나무로 만든 물건과 달리 습기와 열기에도 끄떡없고, 많이 써도 크게 닳지도 않으니까요.”


설명이 길어지자 임오관은 또 술로 목을 축이고서 말을 이었다.




묘덕 스님이 활동했던 청주 흥덕사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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