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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18. 2024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당선작  <조선  활자공  임오관,  평화를  만들다>


“그러면서 조부(도쿠가와 이에야스)께서는 오다 노부나가 공을 벤 아케치 미쓰히데와, 그런 아케치 놈을 토벌하겠다며 일어나 오다 가문을 끝장낸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 놈을 예로 드셨지. 칼만으로는 세상을 지배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서 말이야! 이에 그 대륙의 대황제가 ‘그러면 칼 대신 무엇으로 지배해야 하느냐?’고 묻자, 그 신하가 대답하기를 ‘학문으로 지배하셔야 합니다!’라고 했네.”


하타모토(旗本: 도쿠가와 막부의 상급 가신)들의 입에서 “오오, 역시 이에야스 님!” 같은 찬탄이 쏟아져 나왔다.


쇼군께서는 오른손을 천천히 흔드셔서 하타모토들을 진정시키신 다음 말씀을 계속하셨다.


“조부께서는 당신이 건설하신 새로운 일본에서 학문을 융성시킬 방법을 궁리하셨지. 조선 왕들이 하듯이 말일세. 마침 당신의 10남이자 과인의 숙부인 도쿠가와 요리노부 공께서 기요마사 공의 따님이신 야소히메와 혼인하실 때, 기요마사 공이 조선 활자들을 혼인 선물로 보내주셨지.”


어느 하타모토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역시 기요마사 공은 고귀한 물건의 주인을 잘 아셨다니까!”


쇼군은 그 하타모토를 지그시 눈여겨보신 다음 말씀을 이으셨다.


“그 활자에 주목하신 조부께서는 고요제이 폐하께서 10여 년 전부터 임오관 자네들로 하여금 인쇄 사업을 진행하신다는 소식을 떠올리셨네. 고요제이 폐하께서는 ‘조선 출병은 무리한 행위’라고 하시바를 꾸짖으신 분이시지. 하지만 하시바 그놈은 감히 폐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켰다네. 아마 그래서 조부와 폐하께서 마음이 맞으셨던 게 아닌가 싶구먼. 조부께서도 조선과의 전쟁을 못마땅하게 여기셨으니까! 그것이 게이초 14년(1609년)에 있었던 일이네.”


“그때라면 소인을 비롯한 조선인 인쇄공들이 폐하의 명에 따라 각종 활자들을 만들고 인쇄도 하던 때일 겁니다. 일본인 공장(工匠: 기술자)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고요. 아, 그렇네요! 조선의 금속활자를 모방한 금속활자를 제작하거나, 금속활자 제작용 거푸집을 만들 때 쓰는 목활자를 대량 만들어낼 때였어요! 그러고 보니 금속활자 제작에는 화폐 주조에 쓰는 구리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목활자를 계속 쓰는 것도 높으신 분들이 고려하시던 때였고요.”


“그렇지. 조정에서 『금수단(錦繡段)』을 비롯하여 다양한 책들을 바로 그런 금속활자로 간행하던 때였지. 폐하께서는 조선의 금속활자는 물론 조선에서 수집된 책들에도 관심을 보이셨으니까. 성리학 서적들은 물론 특히 불교 서적인 『직지심체요절』을 접하신 뒤에는 금속활자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셨네. 그래서 자네들을 크게 쓰셨던 거고.”


“저, 쇼군, 뭐 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임오관이 쇼군의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아뢰었다.


“그래, 물어보게.”


“정말로 『직지심체요절』이 폐하께 있는 겁니까?”


“그렇다네. 그런데 왜 묻나?”


“저…, 소인의 집에서도, 그러니까 소인이 조선에 살 때… 금속활자로 찍었던 『직지심체요절』 한 부가 가보로 전해져왔었는데 말입니다…. 그걸 일본군에 뺏겼거든요. 소인을 비롯한 인쇄공들이 한양에서 피난을 준비하다가요.”


“뭐…, 그 『직지심체요절』 한 권을 기요마사 공이 조선에서 노획해 폐하께 바쳤다던데…, 금속활자들과 함께 말이야. 물론 하시바 놈을 거쳐서…. 으음, 어차피 금속활자로 만들었다면 수백 부나 제작했을 거 아닌가?”


“아…, 예…, 그…, 그렇겠죠.”


“그러면 기요마사 공이 바친 책은 자네가 소유했던 책이 아닐 거야! 그런데 자네는 어쩌다 피난을 못 가고 가보까지 빼앗겼는가?”


임오관은 또다시 대답하기 전에 술부터 여러 병을 마셨다.


쇼군께서는 임오관에게 상당히 안 좋은 기억이 있으리라 여기셔서 조용히 기다려주셨다. 그 마음 씀씀이는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던 초대 쇼군(도쿠가와 이에야스)을 연상시켰다.


“임금이라는 작자(선조)가 백성들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임오관은 또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이야기를 이었다.


“신립 장군의 군대가 탄금대에서 일본군에 대패했다는 소식이 들린 뒤부터였을 겁니다. 대궐에서 일하는 내관들과 관리들이 미투리를 사 모은다는 소문이 한양 사대문 안 곳곳에 돌았죠.”


“미투리? 그건 뭐하는 데 쓰는 물건인가?”


“지푸라기 따위가 아니라 삼으로 만든 고급 짚신이죠. 멀리 갈 때 신으면 발이 편합니다. 그러니까 피란을 갈 때 신는 거죠. 그런 걸 대궐에서 모은다? 빤하잖습니까!”


“허어, 조선 백성들 모두의 주군이라는 자가 도성을 안 지키고 달아날 궁리 먼저 하다니!”


쇼군이 혀를 차시자 임오관이 또 술병을 빨며 한탄하듯 털어놨다.


“나중에 소인과 함께 끌려온 선비님들이 말씀하시기를, 임금님이 일본군에 잡히면 나라가 망하니까 그랬던 거라고 했죠. 그러니 임금님이 무사히 도망치신 걸 기뻐해야 한다나요. 그런데 그럴 거면 왜 막대한 재물을 들여 무기를 만들고, 한양 일대를 빙 둘러 성을 쌓았을까요? 왜 백성들에게도 알아서 살길을 찾으라고 명하지 않았을까요? 전조(前朝: 고려) 때 몽고 놈들이 쳐들어오자 당시 임금님은 당신과 신하들은 강화도로 피난을 갈 테니, 백성들도 알아서 섬이나 산에 숨으라 했다던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도 원망스럽습니다.”


임오관이 눈물을 흘려가며 한탄하자 쇼군께서는 아마 조선 왕을 비웃고 계셨는지 씩 웃으시며 혀를 차셨다.


“허! 조선의 왕은 백성들의 충성에 보답은커녕 자기 혼자 살겠다고 달아났으니, 백성들이 품었을 배신감이 하늘을 찔렀겠구먼.”


쇼군의 말씀이 정곡을 찔렀는지 임오관은 분노를 담은 푸념조로 말했다.


“예, 그랬죠. 임금님이 달아났다는 소식이 온 한양에 퍼진 뒤 소인들도 그제야 피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너무 늦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요. 일단 집에 가서 마누라와 자식들에게 보따리를 싸서 도망치라고 했습니다. 곡식과 건어물 위주로 싸들고 무작정 북쪽으로 달아나라고 했죠. 일본군이 한양을 떠나고 나면 그때 보자고 약조했고요. 그런 다음에는 경복궁 안에 있던 교서관(校書館)으로 돌아왔습니다. 소인들의 일터로 말이죠.”


“목숨보다 활자가 더 소중했는가?”


“예, 소인들의 밥줄이었으니까요. 당연히 저 무거운 걸 다 짊어지고 갈 수도 없고, 또 피란길에서 책을 인쇄할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은 했죠. 논의 끝에 저 많은 활자들과 인쇄 도구들을 상자에 담고 우물에 은닉하기로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건져내 다시 일할 생각으로요. 허참! 덕분에 처자식들과는 영영 헤어졌죠.”


임오관은 이번에도 술을 서너 병 들이켜느라 말을 쉬다가 이었다.


“소인들이 짐을 다 쌌을 무렵에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리더군요. 일본군이 벌써 쳐들어왔나 했습니다. 그런데 한양에 살던 백성들 모두가 대궐에 들어와 재물과 식량, 비단 등을 탈탈 털어버리는 소리라는 걸 곧 알았죠. 대궐 앞 육조거리에서는 연기 기둥들이 솟구쳤고요.”


“허어! 조선 백성들이 질렀는가?”


“예, 관공서에 있던 노비문서라든가 세금을 징수하는 데 필요한 서류 따위를 불태우면서 난 거였다고 일본까지 함께 끌려온 자들에게서 들었죠. 감투 쓰신 분들에게 억눌리고 살았던 것이 떠오르면서 쌓이고 쌓였던 분노가 불붙은 화약처럼 폭발한 겁니다! 그렇듯 여기저기에 불을 질러대면서 낄낄거리는 걸로 임금님과 높으신 분들을 향한 제 분노를 나타내던 미친놈들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야말로 나라가 무너지고 질서가 붕괴되었구먼.”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1044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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