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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22. 2024

무성황태후

남강(南江)을 따라 흐르는 비애(悲哀)

        

“안타깝지만 총대장은 아니었소. 총대장은 ‘우키타 히데이에’라고, 왜놈들 우두머리인 풍신수길의 양자라오. 아주 젊지. 올해 고작 약관(弱冠: 20세)이라나. 대장처럼 안 보일만도 했지."


쇤네가  크게  한숨을  내뱉으니,  역관  사내가  위로차  이렇게  덧붙이더군요.


"저 죽은 대장도 상당한 고위급 무장인 건 분명하오. 그러니 미녀가 개죽음을 한 건 아니오. 그럼 이만…. 살려달라고 치성이라도 드리시구려. 나처럼 개똥밭에서 구르며 살더라도 저승에 가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오.”


사내는 이렇게 말하고선 도망치듯 나갔죠.

뒤이어 저희 사이엔 풍파가 일었답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자는… 양반 댁 부인 중 가장 예쁜 이였어요.


“그래, 난 살고 싶어! 어차피 우병사 영감께서 어제 하셨다는 말씀과 똑같은 얘기를, 그 개똥밭 어쩌고 하는 얘기를 저 순왜(順倭: 부역자) 놈도 떠들었잖아! 이 말인 즉, 저 순왜는 영감의 혼백이 보내신 게 분명하다고! 그러니 난 영감의 지시에 따라 살 길을 택하겠어! 내 나름대로 말이야!”


나리께서 믿기 힘드시겠지만, 정말로 양반 댁 부인이 했던 말입니다.


듣기 힘드실 것 같아 그만 얘기하고자 합니다.

 더 이상은 들려드리기 괴롭네요.


아, 예, 알겠습니다. 나리께서 끝까지 듣기를 원하신다면 말씀해드리죠.


한밤중이었고, 비도 그친 뒤였습니다.


왜병들은 관아 마당에 모닥불을 크게 지펴 환하게 하고 관아의 문 앞에 두 명씩 교대로 보초를 세웠습니다.


마침 보초들 모두 어린애들이더군요.

여자에 관심이 있지만, 경험은 없는 것 같아 보였죠.


그 아름다운 부인은 관아의 툇마루에 나앉아 치맛자락을 걷어 버선발을 살며시 드러냈습니다.


두 놈 모두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중 한 놈이 다가오려 하니까 다른 놈이 말렸습니다.

아마 위에 있는 놈들이 논개 언니를 들먹이며 주의를 주었겠죠.


하지만 역시나 못 참더군요.


부인은 다른 보초 눈에는 잘 보이지만 저희 눈엔 안 보이는 곳으로 가서 교접을 했습니다.


두 남녀의 신음소리가, 특히 부인의 신음소리가 저희들 있는 곳까지 들리데요.


일을 끝낸 보초 놈이 바지춤을 추스르며 자리로 돌아가니, 다른 놈이 교대했습니다.


그 뒤 다른 보초 둘이서 교대를 해주러 왔는데, 이 두 놈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그놈들도 앞서 놈들이 하던 짓을 반복했죠.


해가 떴습니다.


왜군의 하급 장수로 보이는 자가 그 역관 사내를 달고 왔죠.


그 부인을 모닥불이 꺼진 곳으로 부르더니 이야기를 좀 나누더군요. 그리고 데려갔습니다.


밤에 역관 사내가 말했던 것과 달리 아무 일도 없었죠.


헌데 한여름인데도 하루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다들 지쳐갈 때쯤 그 부인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왜병을 둘 달고서 당당히 왔죠.


“이것 좀 봐요! 난 이렇게 살 길을 찾았어요! 물론 여러분 중에 저 실성한 관기처럼 여기 나리들을 부둥켜안고서 목숨을 끊으려는 이들도 있으시겠죠. 헌데 어제 그 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우리 모두 죽을 뻔했잖아요! 자, 더 이상 쓸데없는 짓일랑 하지 맙시다. 다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잖아요! 돌아가신 서방님들께는 죄송하지만, 우린 살아야 해요! 게다가 여기 나리들께 잘 보이면 어제 끌려갔던 아이들도 되찾을 수 있어요!”


그러면서 그 여자는 여봐란 듯이 자신의 노란 비단옷을 과시하더군요.

‘기모노’라고, 왜녀들이 입는 옷이었어요.


여인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나더니 결국 하나하나 그 여자의 말에 따르기로 했어요.


쇤네 또한 부끄럽게도 별 도리가 없다 싶었죠.

쇤네 하나 때문에 다 죽게 생기는 것도 원치 않았고, 논개 언니도, 경상우병사 나리도, 역관도 어떻게든 살라고 했으니까요.


하아, 그날부터 창기(娼妓)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하급 무장들을 몇 명씩 받는 정도였어요.


하지만 서너 해가 흐른 뒤에는 왜병들을 하루에 수십 명씩 받아야 했죠.


몸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일 때에만 의원이 휴식할 수 있게 해주더군요.


밥을 굶지는 않았지만, 저놈들 사정도 나빠지는 걸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어요.


종종 두 손을 밧줄로 묶고서 밭일 나가는 소처럼 여기저기 끌고 다니더군요.


진영을 옮긴 건데, 시나브로 부산포와 가까워졌어요.


전쟁이 끝나기 한 해 전에는 배에 태워서 쓰시마로, 그러니까 저어기 대마도로 보내더군요.


전쟁이 끝나는 해까지 대마도에서 살았고요.


전쟁이 끝나던 날에는 욱신거리는 아랫도리를 추스르려고 새벽부터 대마도 해안에 앉아 부산포 쪽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헌데 아침 해가 뜨자마자 누군가가 외쳤어요.

거제도 쪽에서 연기기둥들이 여러 개 솟았다고요.


거제도와 대마도 사이가 얼마나 먼지 고려하면 상당히 큰 연기기둥들일 거라며 놀라워했죠.


해가 중천에 뜰 무렵 크고 작은 왜선들이 하나둘씩 대마도 항구에 들어왔어요.


배들 중 상당수는 부두에 접안하는 걸 포기하고 해안에 좌초하려는 듯이 뱃머리를 처박았고요.

 멀쩡해 보이는 게 단 한 척도 없었답니다.


배에서 내리는 놈들의 몰골은 더욱 참혹했고요.

팔다리나 눈을 잃은 놈, 몸통이나 머리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놈이 부지기수였고, 왜장들 중 상당수는 시체가 된 채 들것에 실려서 내려지더군요.


다치지 않은 왜병들조차 벌거벗은 채로 뛰듯이 내려서는 땅에다 입을 맞추며 엉엉 울더라고요.

 다시는 땅을 못 밟아보는 줄 알았다면서요.


논개 언니가 하늘에서 이런 걸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했죠.


하지만 왜국에 이미 끌려온 저희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더렵혀진 몸을 갖고 어찌 돌아가겠는가!’ 같은 생각도 했고요.


저희 중 제일 먼저 왜놈들에게 몸을 팔았던 그 여자는 숫제 이렇게 말하더이다.


“흥, 북제의 무성황태후도 나라가 망한 뒤 며느리였던  황후 목씨와 창기가 되었다지. 헌데 창기 시절이 황후나 황태후 시절보다 더 재미있다고 평했다더군. 여러분도 앞으로는 내게 고맙다고 할 것이야, 오호호호호호호!”


그러면서 쇤네를 쳐다보며 말없이 비웃더군요.

쇤네가 논개 언니와 얼마나 친했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진주성에서 포로가 된 여인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왜놈들의 창기가 되기로 결심했었고요.




촉석루에서 (작가가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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