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 감상평
신춘문예에 응모할 시를 쓰는 데 영감과 자극을 얻고 싶어 도서관으로 향하였다. 종이 냄새와 숨소리만으로 살아있는 공간임을 알려주는 그곳은 갈 때마다 새롭고 기대된다. 선반을 가득 채운 책들 가운데 나의 손을 잡아끄는 시집이 하나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마음이 살짝 기운다>였다. 잘 알려진 유명한 시인이라 좋은 자극이 될 듯하였다. 나는 홀린 듯이 선반에서 그 시집을 꺼내와 푹신한 의자에 함께 앉았다. 실제 꽃의 특징을 잘 살려서 그린 그림으로 장식된 표지가 나를 반겼다. 수록된 시는 하나같이 간결하면서도 전하고 싶은 말이 뚜렷하여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요란한 기교나 비유 없이 고운 어투와 정감 가는 단어로 이루어져 눈과 뇌가 정화되는 듯하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구름이 보기 좋은 날>이었다. 의자에 기대어 구름을 보고 있는 화자에게 지금 뭐 하느냐고 묻자, 일하는 중이라고 답한다. 이어서 화자는 쉬는 것도 일이고, 자는 것도 일이고, 하늘 보고 구름 보는 것, 노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다 일이라고 한다. 얼마나 멋진 마음가짐인가. 이 시집이 나를 끌어당긴 까닭이 바로 이 시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하던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어루만져 주는 듯하였다. 너는 충분히 노력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이미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반드시 거창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성공한 인생은 아니니까. 비록 신춘문예는 떨어졌지만 이 작품은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응원해 주었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은 시다.
이 시집을 읽으며 이런 시를 쓴 나태주라는 시인이 참으로 부러웠다. 나태주라는 사람과 그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지만 그가 얼마나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지 시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머리와 마음이 어두우면 절대 이렇게 쓸 수 없다. 그의 시는 화려하지도 않고 심금을 울리는 커다란 감동도 없지만 따뜻하고 정겨웠다. 내가 쓴 시와 확연하게 비교된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에는 쓰는 이의 마음과 생각, 가치관과 세계관이 전부 담기는 법이다. 쉽게 감출 수도 없다. 필명에서부터 드러나지만 나는 밝음과 맑음과는 거리가 멀다. 나도 한 번 이런 글을 어설프게 흉내 내지 않고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