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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

by 김여생

햇빛이 따스히 반겨주니 용기를 내 수영장을 간다.
혹시 몰라 바라클라바에 마스크에 누가 보면 영하 10도라 착각할 만한 옷차림으로.
이번 감기몸살이 꽤나 강력했던 녀석이라 다시 걸리는 건 정말 사양이다.
(왠지 수영장에서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은 상태로 돌아다녀서 감기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열심히 수업을 받고 끝날 때가 되니 성격 급하신 어르신들 후후.
아직 끝나려면 시간이 남았는데도 샤워 자리 맡느라 벌써 가셨다.
난 유유자적하다가 거의 맨 나중에 나가서 샤워장을 돌아다니며 순번을 기다린다.
샤워기가 4개씩 6개씩 10개씩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는데도 항상 샤워실은 만원이다.

살짝 눈치싸움으로 요렇게 눈으로 봐서 수영복을 벗고 이제 씻을 사람이 아닌 씻고 수영복을 입을 사람, 수영장에 들어갈 사람을 찾는다.
들어갈 사람들이 아무래도 시간이 덜 걸린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한 바퀴 보다가 여기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르신 두 분이 내 뒤로 오셔서 여기저기 흘긋흘긋 보신다.
한 분이 내 옆으로 오셨는데 마침 자리가 하나 생겼다.
바로 어르신에게 양보한 뒤 난 계속 기다린다.
그냥 어르신들 보면 다 우리 할머니 같고 살짝 몸이 불편하신데도 운동하러 나오신 게 대단하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뒤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샤워하는 내내 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나 다했어 일로와.' 하시길래

'네 천천히 하세요.' 했더니
'여기로 와! 여기!'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치셔서 놀라부렀다.
어른들은 아닌척하고 있어도 다 듣고 다 보고 있다.
심지어 소리친 분은 벽으로 가려진 옆라인에 있는 분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계셨을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혹여 자리 잡을까 빨리 오라며 머리에 샴푸 거품이 가득한 채로 나를 부르셨다.
인기스타가 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꼭 우리 할머니가 동네잔치를 열면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 빨리 와서 한 그릇하고 가라며 소리치며 주셨던 맑은 국물의 잔치 국수가 기억나는 순간이었다.
(나의 시골에선 가끔 마을 사람들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모두 모여서 다 같이 음식 만들고 나눠먹고 하는 것을 즐기곤 했다.)
안 올까 봐 손까지 흔들어가시며 열정적인 모습에 감사합니다 하며 스르르 갈 수밖에 없었다.
샤워하는 내내 어른들은 서로의 등을 석석 밀어주며 수영복 입거나 벗기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도와주기도 하며 그렇게 서로서로를 채워주고 있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정과 배려가 가 이 수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날씨는 춥지만 마음이 따뜻해졌어.
다시 중무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지만 가슴속 한켠이 포근하다.
그러므로 오늘은 멸치로 육수를 내어 잔치국수를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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