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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by 김여생

등산을 나선다.
오늘은 작은 봉우리 대신 산 중턱에 있는 절로 향한다.
산을 올라가는 길은 역시나 요하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에 가지들이 서로 부딪혀 나는 건조한 사삭소리만이 감돈다.
그런데 절에 다가가자 참새 한 마리가 나타난다.
째잭 째재잭.
조그만 게 소리는 꽤 우렁차다.
절에 도착하자 참새와 까마귀 우는소리가 여기저기서 난다.
신기할 따름이다.
오랜만에 왔더니 새로 계단을 해서 말끔해졌다.
계단을 오르고 탑을 지나 대웅전에 들어간다.
절의 중심이 되는 큰 전당이다.
날이 좋을 때는 밖에서 향을 꽂고 인사를 하지만 추워서 모든 문은 닫혀있다.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그리고 옆에 오른쪽에 왼쪽에 계신 분들께 절을 한다.
집안이 불교라 이리저리 눈대중으로 배운 걸로 하고 있지만 이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들어가 보니 외국인 가족이 절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절을 하는 엄마가 신기한지 까륵꺄륵 거리다가 엄마가 여기선 조용히 절을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하자 그때부터 쿵쿵대며 절을 따라 하려는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엄마는 난감해서 계속 주의를 주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내가 괜찮다며 웃음을 지으니 감사하다며 목례를 했다.
외국인 가족이 떠나고 나는 앉아서 조용히 기도를 하다가 대웅전을 나왔다.
왔으면 적은 돈이라도 보시하는 게 맞지만 현금도 카드도 가져오지 않아 오늘은 못했다.
(요즘엔 절에도 키오스크가 생겨서 카드로도 보시 공양을 할 수 있는 아주 현대적인 곳이 되었다.)
당연히 주머니에 카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꽤나 당황을.
다음 주에 다시 한번 들러서 오늘의 몫까지 하고 오자 생각한다.
간 김에 초라도 하나 켜고 싶었는데.
바라는 건 없지만 그저 올해도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잘 지나감에 감사함으로 초를 켜고 싶었다.
나왔더니 문 앞 신발장에 볕이 잘들자 고양이 한 마리가 와서 누워있다.
오늘따라 비상 간식도 들고나오지 않았는데.
안 챙기면 이렇게 생각지 못하게 고양이와 마주한다.
눈을 감고 쉬고 있는 고양이에게 다음 주엔 맛있는 간식 가져올게 또 보자며 인사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소원탑에 가서 조그마한 동자승 석상에 인사를 하고 걸어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바퀴.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걸으니 머리가 맑아진다.
오늘따라 날씨도 어쩜 이리 좋은지.
새파란 하늘에 새들이 따라오며 까악까악 거린다.
바람도 사락사락 불어주고.
등산할 때 열이 났다가 살짝 식으니 몸에 찬기가 돌아 잠시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 넣어온 텀블러를 꺼내어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원래 절을 올 생각은 아니었는데 갈림길에서 발걸음이 절로 향해버린 오늘이다.
소원탑을 바라보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는 끝내준다.
'이런 즉흥도 필요하지.'
내려가는 길, 바람이 살랑살랑 불며 아까와는 다른 소리들이 난다.
춥고 콧물은 쉴 새 없이 났지만 아주 포근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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