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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철 Aug 01. 2024

악연의 시작

 2005년 12월 1일 (토)


 현우는 커피숍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동수가 그를 보고는 마치 옛 전우를 만난 듯 와락 껴안았다. 동인도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현수 형, 예전보다 훨씬 멋져 보이네요.”

 “문제는 돈이 없다는 거야.”

 동인의 립서비스에 동수가 살짝 비꼬았다. 

 “우리 만난 지 벌써 1년이 넘은 것 같은데?”

 “정확히는 아직 1년은 안 됐어. 현수 형이 첫 월급으로 횟집에서 한 잔 했던 거 생각 않나?”

 그러고 보니 동인의 말대로 미래 금융을 그만두고 두어 달 지나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백수였던 현우가 취직한 후 한턱내는 자리였는데, 자기도 잊고 있었던 일을 동인이 기억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형. 어떻게 지내세요? 동수 형 말로는 그 회사 퇴사했다던데… 고생이 심하겠네요.”

 동인의 위로에 현우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럼 너, 요즘 돈이 필요하겠구나?” 

 “어떻게 알았어?”

 “돈 궁한 사람 눈 밑에는 엽전 주름이 생기거든. 네가 지금 그 꼴이야.”

 동수가 다시 갈구었다.

 “내가 자의로 그만둔 게 아니라… 회사가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었어.”

 “야호! 잘됐네!”

 ‘짝짝짝!’

 갑자기 동수가 물개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현우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형은 참, 이번 작업에 현수 형이 필요하긴 하지만 직장 잃은 사람 앞에서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정말 뇌가 없어. 뇌가.”

 동인이 쏘아붙이자 동수는 머리를 긁적였다.

 동인은 친형 동수에게는 반말을 썼지만, 두 살 위인 현우에게는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러면 요새 뭐 하세요?”

 “실업자가 된 지 세 달이 넘었는데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가 않네. 더욱이 특별한 기술도 없으니 말이야. 몇 군데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야.”

 “그래도 넌 대학물까지 먹었으니 우리보다 낫잖아. 게다가 외모도 멋있고. 만약 내가 너라면 걱정 하나 없겠네. 근데 현수야, 월급쟁이로는 언제 집 사고 결혼하겠어? 이따위 사회 구조에서는, 부자는 계속 잘살겠지만 우리 같은 서민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요 모양 요 꼴이라고. 동인아, 그렇지 않냐?”

 “그건 동수 형 말이 맞아요. 형도 잠깐 사채 사무실에서 일했으니 알겠네요. 고생은 직원들이 죽도록 하고 전주들이 다 가져가잖아요. 이런 빈익빈 부익부 사회에서 우리는 영원히 희망이 없을 거예요!”

 이전에 보았던 동인의 차분한 모습은 사라지고 그의 목소리는 격앙되었다.

 현우는 그들을 볼 때마다 친형제인데 어쩌면 저리도 다를까란 생각을 했다. 동수는 크고 마른 체격에 곱슬머리이며,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반면 동인은 작은 키에 다부진 근육질로 직모이며, 똘똘한 인상을 주었다. 또한 동수는 단순하고 덤벙대지만 동인은 꼼꼼하고 침착했다. 아마도 이들을 친형제라고 하지 않는다면 남남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근데 오늘 왜 만나자고 했어?”

 현우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동수는 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본 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현수야, 끝내주는 계획이 있는데 함께하지 않을래?”

 “뭔지 알아야 하든지 말든지 하지.”

 “음, 음. 그게 말이야….”

 동수는 막상 말할 자신이 없는지 머뭇거렸다. 그러자 동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요즘 우리는 비자금 세탁을 하고 있어요.”

 “카드깡은 안 하고?”

 “그 일은 그만둔 지 오래됐어요.”

 “비자금 세탁이 뭐야? 정치자금이나 범죄자금을 의미하는 건가?”

 현우는 ‘비자금 세탁’이라는 용어를 매스컴에서만 들어본 터라, 이 상황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남의 명의를 빌려 돈을 분산하는 거죠. 결국 세금을 떼먹는 거라고 보면 돼요.”

 그는 알 듯 모를 듯 했지만 이전의 카드깡보다는 스케일이 큰 일로 보였다. 

 “언제부터 했어?”

 “조금 됐어. 일하게 되면 곧 알게 될 거야. 우리 재회를 기념해서 한잔하는 건 어때?”

 “그래요. 오랜만에 만났으니 마음껏 마셔요.”

 신이 난 동수는 어느 음식점에 예약 전화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택시를 타고 간 곳은 유명 한우 고깃집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동수는 만 원짜리 지폐가 가득한 지갑을 흔들며 으스댔다.

 “오늘은 내가 쏠 테니 실컷 먹어.”

 “그래, 고마워.”

 “야, 많이 먹어라. 여기 한우는 투뿔뿔짜리라 아주 맛이 죽여. 돼지고기는 왜 이런 감칠맛이 없나 몰라.”

 “아직 덜 익은 거 같은데?”

 “소고기는 원래 이렇게 먹는 거야. 그래야 육즙이 빠지지 않아.”

 “그렇구나. 알겠어.”

 ‘삼겹살에 핏기만 가셔도 입에 처넣던 녀석이….’

 동수는 볼이 터질 듯이 고깃덩어리를 입에 밀어넣었다. 현우는 몇 점의 고기를 삼켰지만,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2차로 룸살롱에 갔다. 거기서 두 사람은 만 원씩 집히는 대로 아가씨들에게 뿌렸다. 현우는 이들의 씀씀이가 예전과는 다르게 크고 헤프다는 것만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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