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내 맛대로 라이프
93년 9월 15일, 충청남도 하늘아래 편안한 곳 천안에서 태어났다. 천안 토박이었다. 봉명초, 서여중, 월봉고 졸업생이다. 안성동아방송예술대 한 한기 다니고, 학교 똥군기와 엄마의 신체적 질환으로 학교에 등록금을 쏟는게 아까워서 내적갈등을 하다가 인생 첫 탈주로 자퇴를 해버린다.
자퇴 후 플랜 비가 없어서 밤낮이 바뀐생활을 한다. 해가 뜨는게 싫었다. 아침에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아직도 침대속이었다. 대학교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술과 교수들과 맞담배로 족보를 얻어내는 행위들, 공부를 한 친구나 아첨을 떤 친구들이나 성적이 똑같아지는 모습. 뿌까를 일러스트로 만들지 못해서 이해를 못해서 우니까 친구들이 담배를 권유한다. 담배를 권유해준 게 잘못된 게 아니라 위로하는 방법이 담배였던 것이다. 나는 담배피는게 잘못된 게 아닌데 권유는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알겠다고. 너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렇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내가 자퇴하고 과탑 1등을 찍고도 연락을 줬다.
어디서 뭐하고 지내는지, 나 과탑했는데 너한테 가장 알려주고 싶었다고 문자를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암흑기 시절이여서 그 사이에 신천지 신도들에게 포섭당할 뻔했어서 연락을 못했다. (*신천지 종교인들은 발작하지 마셔라, 그냥 그쪽은 내 취향이 아니니까 걸러서 읽어라.) 아무튼 이 친구말고도 몇몇 연락이 닿았고, 한 번은 만나야 겠다 싶어서 만났지만 여전히 술이 쎈 친구들이었다. 나도 나름 약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는걸 싫어하는 성격에 주는대로 다 받아마시고 남학생 수면양말 위에 오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멀쩡해지면 또 입꾹닫하고 학교를 다녔다. 다음 두 번째 입학한 학교에서는 술강요가 없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워낙에 기대가 없어서 웬만한 군기에는 귀여웠다. 거 예비역들이나 나이든 선배들은 취업에나 집중해라. 여자애들 자빠뜨릴 생각 말고 건실한 청년이 될 생각을 하란말이다.
두 번째 대학에서 가입한 정신건강동아리에서 엠티를 갔다가 내가 토했던 1학년 시절이 생각나면서 1학년 남자애가 누워서 토하는 걸 양손으로 받아줬다. 비위가 꽤 강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실수했던 적이 있기에 다같이 토하는 걸 관전했지만 <박씨물고온 제비> 신부동 술집에서도 오바이트를 치워본 경험이 있기에 서로 상부상조 하는 거지 뭘 하면서 치워줬다. 물론 씻겨주고 옷갈아입히는건 남자어린 친구들이 화장실로 데려가서 해줬다.
그러니 매년 새내기 친구들은 꼭 술은 어른들한테 배우고, 이미 청소년기에 배운 친구들은 술약한 친구들에게 절대 강요하지마라. 자기 주량이 뭔지, 취향이 뭔지만 알아가고 안전한 사람들하고만 마셔라. 그리고 슬플때 혼자 마시지 말고, 기쁠 때 안전한 사람들과 축배를 드는 정도로만 마시는 걸 개추한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첫 아르바이트가 편의점이었고, 그땐 학교 자퇴 후 계획이 없어서 쓰리잡을 뛰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게 싫었지만 엄마의 손빨래 하는 등을 보고 내 자신이 한심해서 알바몬보고 제일 가까운 편의점, 그리고 웨딩홀 안내, 야간 공장을 3일간 잠 한숨 안자고 돌리니까 진짜 뒤질 것 같아서 야간 공장부터 때려쳤다.
그렇게 해서 번돈은 안경 맞추는 돈으로 나갔고, 나머지는 용돈으로 썼나? 기억이 잘 안난다.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꼭 대기업이 아니여도 사회생활을 알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직군, 사람응대하는 방법. 진상들 처리하는 방법 다양하다.
아르바이트 중독이 된다. 딱히 뭘 사고 싶은건 없어도 아르바이트를 안하면 집에서 할 게 없어서 꾸준히 했다. 대부분 일을 성실하게 하니까 오래 함께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받았다. 단타 일회성 알바 아닌 이상 알바시즌이 되면 연락을 꼭 주셨다.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또 나와 줄 수 있는지.
편의점알바, 웨딩홀 하객 안내, 야간 공장, 일반 가게 레스토랑 서빙, 아이비클럽 교복점, 이마트내 수산코너, 이마트내 구슬아이스크림 판매, 삼성디스플레이스 내 화장품 판매 단기 알바(?), 천안아산신세계점 교보문고 핫트랙스 계산대, 모다아울렛 쥬얼리점, 아산트라팰리트 리틀족발이 서빙, 신부동 S 당구장, 고기 굽기. 또 뭐가 있을까? 대략 생각나는 아르바이트는 이 정도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전까지는 이 생활을 유지했다.
빠진 게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해도 나쁘지 않았다. 꽤나 재밌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알아간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닭발시켜먹고 햄버거 사먹고 술사먹고 뒷골목에 가서 보세 옷 입고 부모님 생신 조부모님 생신되면 용돈드리고, 친구들하고 선물 주고 받고 뭐 그렇게 지냈다. 딱히 특별할게 없는 인생이다.
그러다가 직장인이 된다. 월급은 박봉이라는 사회복지사 타이틀이지만 대기업이나 뭐 돈에 욕심이 크게 없는 나는 사회복지사 직업이 나쁘지 않았다. 성격상 엄마가 편찮으실때, 엄마 나 뭐할까? 했을 때, 너 성격상 그냥 사회복지사가 어울려. 이 한 마디에 한 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사회복지과를 지원했으니 말이다.
내 꿈 선택지엔 사회복지사가 없었다. 근데 입학을 했다. 근데 그게 또 안 맞지 않았다. 둥근 친구들 사이에 나는 또 잘 지냈다. 그러다가 학교생활을 하다보니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고 하다보니 이력서에 자기소개서에 쓸 내용을 적다보니 사회복지사 쪽에 취업을 하게 된다.
학교 필수 조건인 200시간 봉사를 채우려고 가입한 봉사 동아리에, 봉사 했던 곳에서 좋게 봐주셔서 좋은 기회도 갖게 된다. 좋은 경험들을 하고, 배웠다. 그러다가 생각이 든다. 더 나은 곳 더 좋은 곳이 있을까? 4년제 그리 썩 좋은 대학은 아니여도 이런 반복적인 노동을 하기 위해 내가 그 고생을 했을까? 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썩은 둥글레차 볶은 물에 나는 터져버렸다. 썅.
그래서 울면서 회의를 하고 PPT를 만들다가 플랜 비가 없어도 또 퇴사생각을 한다. 내 아무리 돈이 없다 할지라도 이런 수모를 받으면서 굳이? 직장에? 내 인생을? 차라리 얼굴을 안보고 말지라는 생각에 빠진다. 일절 사과를 받아본 기억이나 경험은 없다.
세상에 일자리가 이것뿐이겠냐. 나는 이쁨 받기 위해 무언갈 열심히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내 자체가 열심히하는 사람인지라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알아서 스스로 뭔가 해내는 타입이다. 그리고 나는 질문을 많이 한다. 취조가 아니라 질문이다. 질문을 했을때 원하는 답변이 수준 미달이면 관심을 꺼버린다.
내가 배우는 입장에서 모르는걸 질문했더니 돌아오는 말 "그거 요즘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와 블로그 참고해서 공부해봐." 그게 MMPI 였다. MMPI가 뭔지도 몰랐다. 근데 나는 그걸 진행했다. 얼마나 재밌고 신나는 상황이었던가. 연차가 어릴땐 그게 나쁜건지 좋은건지 1도 모른다. 까라면 깐다는 말이다. 그치만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나쁜 어른들은 천지였던 것이다.
세상에 이치라고? 개같은 말좀 하지마라. 말좀 이쁘게 하라고? 그런 당신들은 언행이나 바르게 하고 우아, 고품격, 배운척, 학력 학력 직급 권위 사모님 소리듣고싶어하지좀 마라. 하찮다 아주 그냥 이 겉 껍데기만 늙어빠진 새끼덜이 배운척하고 위에 앉아 있는 꼴들이 나보다 하찮을 수가 그지 없다. 그지들 보다 더 마음이 가난한 자들아. 어디까지 내가 입이 거칠어질까 궁금한가? 아 물론, 못된 사람들 한정 쓴소리다.
왜? 후배가 쓴소리하니까 아주 심장이 바운스바운스 하나? 그럴땐 <바운스-조용필> 영타 왜 안쓰냐고 하지 말아라. 영타로 변경해서 쓰는 것 조차도 나는 귀찮아 한다. 어떡하지? 이건 내가 고쳐햐 하는 걸까? 우리 외국인들도 이걸 읽을까? bounce 철자를 모른는건 아닌데 아무튼 또 써준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서 해줘야 또 흐름에 탑승할 수 있은까요?
반말 존댓말 왔다 갔다 내 마음이다. 그치만 닉네임이 쏘리인점을 잘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 멋대로 내 맛대로 사는 중이다.
엄마가 저 선글라스를 도대체 왜 샀냐고 한다. <젠틀 몬스터>를 사줄껄 그랬나 싶어하신다. 하지만 나는 29cm(*29세 여성들을 노린 패션 플렛폼이다. 29세 정도 되면 이젠 취향에 따라서 구입을 한다는 의미라고 들었던 것 같다. 아이디어 좋다.) 에서 3만원짜리 선글라스를 3년인가 썼다. 이왕 다음 선글라스는 <젠틀 몬스터> 정도여도 괜찮았는데 성수동에 놀러갔다가 내 취향인 힙한 음악이 나오길래 들어간 매장 <키스> 키스맞나? 아무튼 그 매장에서 노래에 바운스 타다가 이것 저것 껴보다가 내 취향이라서 그냥 샀다. 어차피 앞으로 선글라스는 구입할 마음이 없다. 눈은 두 짝인데 여섯 짝 처럼 선글라스를 3-4개씩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격이 50만원이 훌쩍 넘었지만 내가 365일 50만원씩 긋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그래서 여름에만 쓰는게 아니라 사계절 내내 써주려고 한다. <자크 뮈스> 브랜드다. 그러니까 놀러나가면 아무리 지갑을 지키려고 해도 쓸 수 밖에 없어서 카드 정지를 하고 놀러나가볼까 싶기도 하다. 쓸때없는 지출을 막기 위해서 일시 카드정지를 하고, 현금으로만 5만원 들고 나가면 딱 필요한 지출만 하고 돌아올 수 있다.
아무튼 이 선글라스를 끼면 엄마는 꼭 너 같은거 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랬다. 지금 내 멋대로 사는 중이니까 조용하라고. 멋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멋쟁이의 멋, 그리고 니 멋대로 해라의 멋. 나는 두 의미대로 살고 있다.
친구들아, 후배들아, 선배들아. 당신만에 멋대로 살아라.
단, 범법행위 누군가를 해하는 일은 최대한 멀리 해라.
이미 했다고? 그렇다면 자수해서 광명 찾길 바란다.
빛바랜 당신의 이름을 다시 새롭게 찾으라는 뜻이다.
우리 띨박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