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걸 멀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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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날그날 편히 살고 싶고, 자기답게 사는 것을 좋아하며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은가? 혼자 있는 것이 좋고 먹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지는 때가 있으며 과자나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고 온종일 집에서 게임이나 인터넷만 하는 경우가 자주 있는가? <하류사회> 중류의식이 무너지고 하류의식이 범람하고 있다고 하면서 양극화 시대에 하류인생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따르면 앞에 던진 질문에 당신이 해당된다면 당신 기준으로 살면 절대 안 된다. 정신 차려라.
(* 이 문단을 읽고 든 생각은 "난가? 나잖아."였다. 다들 예쁜 말로 나답게 살라면서, 자신을 잃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나답게 사는 순간 하류인생 또는 양극화 중에 중류에서 하류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한다. 맞다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면서 낭만적인 이야기는 세상이 좋은 곳이라고만, 그리고 모든 사람은 착할 것이라는 내 생각이 그렇게 세상은 꽃밭일 거라는 내 대가리는 깨졌다. 뒤통수 치는 새끼들. 그리고 그 뒷이야기에 쉽게 선동이 되어 오해하는 사람들 딱 거기까지였던 것을 알게 되었고, 안 순간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사람은 본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심리가 강한데 더 이상은 그러기가 싫어서 원래 있던 내 모습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다시 살만해지던데. 주변 사람들이 이런 내 모습이 싫든 말든 그건 중요치 않다. 그 사람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 2억 도 없는 내가 20억이 모이기 전까지 한 푼도 안 썼다는. 그건 3번의 자살 시도와 피보다 진하게 산 경험이 없으면 감히 이룰 수가 없다. 한 번 태어나 그 차고에서 얼마나 처절하셨을까? 감히 저도 그 마음을 알아요. 할 수 있을까? 그나마 비슷한 경험을 찾자면 아버지가 술에 취해 폭력적일 때 중학교 1학년땐 내가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어서 작은 이모 시댁 창고에서 공부했던 기억만 남는다. 깨진 유리조각을 밟아도 내 발바닥은 아프지 않았고, 주변 이웃들에게 문을 두들기며 도와달라 소리쳐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경찰이 왔지만 그냥 달래기만 할 뿐. 그때 내 나이가 14살이었고, 그때 나는 차라리 아버지가 차에 치어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할 정도로 너무 밉고 싫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진 나도 미웠고, 그런 아버지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싫었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드시지 않으면 유머도 있고 퇴근하면 항상 양팔로 오빠와 나를 단숨에 안아 올려주던 사람이셨다. 술 깨고 다음날 아버지의 만행을 기억하시는가 싶어서 공테이프로 녹음한 적도 있었다. 그때의 아버지는 자신의 욕설이 부끄러우셨던 걸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고. 그때 아버지는 많이 힘드셨고, 술에 의지하셨던 것 같다. IMF 개 같은 놈. 그럼에도 아버지는 악착같이 살아 내셨다. 지금에서야 그냥 이렇게 글로 몇 자 적는 게 전부지만 그때 어린 14살의 나는 그랬다. 그래서 조금만 쿵쿵거려도 자주 깜짝 놀란다. 술 취한 아버지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세상 부서질 듯 두들겼던 그 소리가 그 데시벨이 아직 내 귀에는 박혀있나 보다. 그러니 4년 이상 만난 남자친구가 왜 이렇게 깜짝 놀라냐며 죄 졌냐며 그렇게 핀잔을 줬을 때, 나도 잘 모르겠다고. 근데 알게 되었다. 내가 왜 유독 예상치 못한 큰 소리가 나면 움찔하게 되는 지를. 알고 나니 그 지점을 알고 나니 이제는 덜 놀란다. 깜짝 놀라는 것과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것. 이제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아니라 깜짝 놀라고 만다는 것뿐이다.
(*결론은 세상이 좆같을 때 술을 찾는 건 해결책이 아니고 하류인생 중에서도 하류로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행위인걸 알았고, 술을 좋아하지만 즐겨마시진 않고 힘들 때일수록 중독에 빠지는 게 아니라 독하게 마음을 먹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는지를 나열한 후에 실천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그 사이에, 그 과정에 방해가 되거나 흐름을 끊기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차단을 박아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내 인생에 더 이상은 타인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으로, 세상에 맞춰 살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쉽지 않았고, 이제는 안다.
세상에 맞춰사는 게 아니라 세상을 나에게 맞추도록 해야 한다는 걸.
그렇게 하루를 내 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누군가의 건네는 손을 잡고 그게 검은손일지 투명한 손일지
나를 총알받이나 나를 썩 먹고 뱉으려는 손인지.
손을 내밀 순 있지만
그 손을 잡고 안 잡고는 내 선택에 달렸다는 것을.)
(* 가장 중요한 건 누구의 손을 잡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스스로가 손바닥으로 짚고 일어나서 다시 걷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자전거를 타고 트럭을 피하려고 대차게 넘어졌고.
쪽팔렸지만
그냥 다시 일어나서
별 일 아니었구나.
이 정도면 다행이지
그러고 그냥 또 페달을 밟고
어디를 가볼까.
나아가는 것뿐이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어도
진짜 웃음이 나와서 웃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웃음 안에는
웃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나이가 되어버렸다.
내 나이 33살 만에 일어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