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전통 사상은 유교, 불교, 도교를 바탕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그중에서도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유교, 특히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아 사회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조선 후기, 시대는 거대한 사상적 갈림길에 직면하게 된다.
오랫동안 나라의 근간이던 성리학은 점차 경직되어 갔고,
그에 따라 신분 질서는 더욱 굳어지며 백성들의 삶을 옥죄었다.
시대는 변화를 갈망했지만, 사상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런 폐단 속에서 등장한 것이 ‘실사구시(實事求是)’,
곧 사실에 기반한 진리 탐구와 실천적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학문, 실학이었다.
실학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관념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며,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사유의 흐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실학이 본격화되기 전인 17세기 초,
명나라말기 마테오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가 중국 사대부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이다.
서양에서 온 천주교(서학)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이라는 사상을 담고 있었고,
이는 어쩌면 당시 조선 사회의 신분제 문제에 꼭 필요한 개념이었는지도 모른다.
성호 이익은 이황과 조식, 서경덕의 학통에 뿌리를 둔 유학자였지만,
천주실의의 발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며,
교리를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우리가 취할 만한 점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그는 외래 사상에 대해 배척이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서 접근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실학자들은 천주교를 단순한 이단이 아니라, 사유할 만한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선에 천주교가 처음 전해졌던 17세기에는 큰 마찰이 없었다.
하지만 1790년, 로마 교황청이 ‘조상 제사 금지령’을 내리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효의 실천이라 여겼던 조선 유교 사회와 천주교의 교리는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에 따른 신자들의 배교와 박해 사건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신념과 전통, 외래사상과 유교적 질서의 경계에서 조선은 이제, 새로운 사유의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천주교 사상은 조선 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정약용 가족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상을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며, 모든 것이 고정되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계절의 변화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조선 사회가 외래 사상을 경계했듯, 중국 역시 천주교를 유교적 질서를 위협하는 사상으로 여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테오 리치가 1603년에 저술한 『천주실의』는 한때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로 읽히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 가져온 ‘빛’은 분명했다.
신분 질서에 균열을 내었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새로운 사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 빛 이면에는 십자군 전쟁이라는 ‘그림자’도 존재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전쟁, 학살, 침략.
절대적 신념이 어떻게 폭력으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한쪽에서는 선의를 베푸는 손길이 있었다.
사상은 그것을 품는 사람에 따라 구원이 되기도 하고, 파괴가 되기도 한다.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 사상으로 뿌리내리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피와 희생이 있었다.
그들은 신념을 버리지 않았고, 그 신념이 곧 죄가 되던 시대를 살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역사는 변했지만, 권력이 신념을 억누르는 모습은 되풀이된다.
그 신념 한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사상의 중심, 『천주실의』.
이제 그 책을 들여다보자.
마테오 리치(1552.10~1610.05)는 중국을 비롯한 동양에 기독교를 정착시킨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였다. 그는 『천주실의』에서 유교적 표현을 빌려 천주교 사상을 풀어냈고,
이 책은 당시 중국과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천주실의] 서문 일부 발췌
“온 천하를 화평하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상의 도리는 궁극적으로 오직 하나로 함에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현자와 성인들은 신하들에게 충성스러운 마음을 권하였습니다. 충성이란 두 마음이 없음을 뜻합니다.
나라에도 주인이 있는데, 천지에 유독 주인이 없겠습니까?
나라가 하나의 군주에 통섭되거늘, 어찌 천지에 두 주인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군자라면, 우주의 근본이요 창조와 생성의 으뜸인 존재를 반드시 잘 인식하여, 공경하며 사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중국이란 요순의 백성이요, 주공과 중니의 가르침을 배운 민족이니,
천리(天理)와 천학(天學)은 결코 다르게 고쳐져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천주실의/ 송영배 외/ 서울대학교 출판부]
이 짧은 서문 안에 마테오리치는 서양의 신, 곧 천주를 동양적 언어로 설명했다.
그는 “천지에 두 주인이 있을 수 없다”는 유교적 비유를 들어 천주를 우주의 유일한 주재자로 규정했다. 또한 동아시에 전통에서 말하는 ‘상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서학이 낯설지 않게 다가가도록 했다.
『천주실의』는 이러한 사상을 구체적으로 풀어낸 책으로 상·하권 합쳐 8편으로 구성된다.
먼저 상편에서는
1편에서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그것을 주제 하며 안양(安養)하심을 논하고,
2편에서는 세상사람들이 천주를 잘못 알고 있는 이유를 밝힌다.
3편에서는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여 동물과 크게 다름을 설명하고
4편에서는 귀신 및 사람의 혼에 관한 이론을 분석하며, 천하 만물은 한 몸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풀이한다.
이어지는 하편에서는
5편에서 윤회의 여섯 방도와 살생을 금하는 오류를 논박하며, 재게(齋戒)와 소식(素食)을 올리는 바른 뜻을 논한다.
6편에서는 의지가 소멸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아울러 사후에는 반드시 천당과 지옥의 상벌로써 세인들이 행한 선악에 응보가 있음을 설명한다.
7편에서는 인간 본성의 본래적 선을 논하고 천주교인의 올바른 배움을 서술하고,
8편에서는 서양 풍속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며, 성직자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와 천주께서 서양에 강생 하신 이유를 해석한다.
『천주실의』 2편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천주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까닭을 밝히며, 특히 동아시아 전통 사상과의 차이점을 논한다.
마테오 리치는 유교·불교·도교가 각기 다른 근본 원리를 세워왔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지적하며 천주 신앙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설명한다.
아래는 중국의 한 선비와 나눈 문답 가운데 한 대목이다.
*중국선비가 말한다;
[어제 선생의] 현묘한 말씀을 흡족히 듣고 심취하여 밤새도록 생각하느라 잠자는 것을 잊었습니다. 오늘 다시 가르침을 받아, [제] 마음의 의혹을 다 풀려고 합니다.
우리 중국에는 예로부터 삼교(三敎)가 있어 각기 교파를 세우고 있습니다. 노자(老子)는 만물은 무(無)에서 생겨나기에 ‘무’를 도(道)라고 합니다. 불교는 현상(色)은 공(空)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여 ‘공’을 힘써야 할 일로 삼습니다.
유교는,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다고 하여 오직 유(有)를 마루(宗)로 삼고, 성(誠)을 배움으로 삼는다고 말합니다. 선생의 뜻으로는 어느 것이 옳다고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양선비가 대답한다;
도교나 불교에서 ‘무’니 ‘공’이니 하고 말하는 것은 천주의 도리와는 서로 크게 어긋나므로 그것을 숭상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유’니 ‘성’이니 하는 것은 비록 그 해석을 다 듣지는 못하였으나 진실로 [도리에] 가까운 듯합니다.
중국 선비가 말한다;
우리나라의 ‘진실한 지식인’[君子]도 역시 도교나 불교를 통렬히 배척하고 그것들을 매우 통탄하고 있습니다.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도교나 불교의 무리도 역시 천주이신 위대한 아버지께서 내셨으니 우리의 형제입니다.
비유하자면, 우리의 동생들이 미친 병에 걸려 고꾸라지며 괴이한 짓을 하면 우리는 형된 도리로서 불쌍히 여겨야 하겠습니까, 통탄만 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유교)가 저들(불교와 도교)을 잘못이라고 하면 저들 역시 우리가 잘못이라고 하여 논쟁이 분분하여 서로 불신하였으니, 천오백여 년 동안 하나로 합일될 수 없었습니다.
*중국선비가 말한다.
바른 도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어찌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불교와 도교의 이론은 그것들을 밑받침에 주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처음에 ‘비어 있다’[空]가 나중에 ‘채워지게’[實]되며, 처음에는 ‘없다’[無]가 나중에 ‘있게’[有]되므로 ‘공’과‘무’를 만물의 근원으로 삼는 것은 그럴듯해 보입니다.
*서양선비가 대답한다.
사물은 반드시 참으로 존재해야만 비로소‘사물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있지 않으면 사물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주실의』는 단순한 종교 교리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서양 사상의 접점을 모색한 철학적 시도였으며,
당대 지식인들에게 ‘다른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창(窓)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유불도(儒佛道)를 이해하려 노력했으나,
결국 도(道), 공(空), 이(理) 같은 개념은 천주의 진리와는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우주의 본질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하늘, 땅, 사람, 짐승처럼 실체로 존재하는 것들이고,
둘째는 이러한 실체에 종속되는 속성이다.
그에게 있어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도(道), 공(空), 이(理)가 나온다는 동양 철학의 관점은 수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유학자들에게 친숙한 표현을 택했다. 서양의 ‘하느님’을 중국식 ‘상제(上帝)’라 칭하며, 유교 문화권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신 개념으로 천주를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