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은 집 구하는 계절
“너가 선택한 거니까 너가 알아봐.”
처음 원룸 계약이 만료되던 때, 아버지가 내게 하신 말씀이다.
기숙사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대학교 덕분에 반강제적?으로 자취를 시작했다. 당시의 방은 부모님께서 알아봐주신 것이었고 야탑역에서 20분 거리의 전세였다.
2학년 때는 휴학하며 노량진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었는데 자취방에서 버스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맞춰 가려면 새벽 7시에는 나왔어야했다.
21살의 나는 꽤나 철이 없었다. 부모님 돈으로 구한 집이니 계약기간이 끝나면 부모님께서 새집을 알아봐주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철없는 나를 그냥 두지 않을 아버지였다.
뒷바라지에 올인하던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는 나를 독립적으로 키우셨다.
일례로, 나는 아버지로부터 아주 빡세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초등학생에게 아동용 자전거가 아닌 성인용 자전거로 연습을 시키셨다. 안장에 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서있기도 어려웠는데 그런 걸 이해해 줄 리 없는 무뚝뚝한 아버지셨다. 넘어지고 다시 타고를 몇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두 발 자전거를 몰 수 있었는데 문제는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발이 땅에 닿지 않으니 멈추면 옆으로 고꾸라질 게 뻔히 그려졌고 자전거의 무게가 내 다리를 짓누를 것을 알았기에 무서웠다.
내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어딘가에 부딪쳐서 멈출 것이냐,
브레이크를 잡고 옆으로 넘어져서 멈출 것이냐.
나는 전자를 선택했고 광장 끝에 있는 지하도 벽에 가서 부딪혔다. 부딪히면서 옆으로 고꾸라지는 것은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다.
서울로 이사해야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을 때도 아버지는 같이 가줄 수 없고 내 선택은 내가 한 것이기에 부동산에 직접 가서 알아보라고 하셨다.
두려웠다.
가서 뭐라고 말해야하지?
집을 어떻게 알아봐야지?
부동산은 어떻게 선택하는거지?
사기 당하면 어떡하지?
고민은 잠깐이다. 해결책부터 찾아야한다. 일단 직방과 같은 부동산 중개 어플을 깔았다. 매물을 보고 연락하면 이미 계약된 매물도 있었다. 계약이 된 걸 왜 아직도 올려놓는 것인가.
몇 개를 검색하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를 찍었고 그분은 여러 집들을 내게 보여줬다. 당시 살고 있던 집이 오래된 집이었기에 첫 번째로 보여준 신축 방이 끌렸다.
다른 방들은 오래되었지만 넓었는데 가격은 비슷했다. 월세로 하면 50만원은 기본이고 전세는 7500-8000 사이였다. 집들은 다 오래되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비쌀 수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울에서 집을 구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신축 방은 매우 작았지만 빌트인으로 작은 1인용 옷장과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었다. 신축이기에 깔끔했고 화장실도 깨끗했다. 신대방삼거리역이 도보 2분 거리에 있었고 학원까지는 걸어서 20분.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내 추구미는 깨끗함에만 치중되어 있었기에 다른 조건은 따져볼 생각도 못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나의 큰 오산이었다.
침대를 들여놓으니 사람이 둘은 못 들어가는 공간이 되었다. 그제서야 이방이 굉장히 작은 방을 계약했음을 알게되었다. 또한 1인용 옷장은 끽해야 옷이 몇 벌 들어가지도 않는 옷장이었다. 그래서 침대 끝에 2단 행거를 설치했는데 어느날인가에는 무너져있곤 했다.
나는 매년 겨울시즌마다 이사를 했는데 이집을 알아볼 때도 매우 추운 겨울이었다. 결국 나는 집을 알아보고 나서 독감을 앓았다. 시험 공부로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있었고 부동산으로 집을 알아보는 일이 녹록치 않음을 몰랐기에.
그때의 경험은 자양분이 되었고 세 번째 집을 알아볼 때에는 좀더 능숙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2년 전보다 조건은 추가되었지만 오히려 갈피를 잡을 수 있었고 우선순위에 따라 내가 포기할 수 있는 조건과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을 구분할 수 있었다.
<집을 알아볼 때 체크한 기준들>
1. 화장실의 수압이 잘 나오는가?
2. 집과 지하철역 혹은 버스 역이 가까운가?
3.집 아래 현관에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가?
4. 창문을 다른 건물이 막고 있는가?
5. 엘리베이터가 있는가?
6. 각종 가전 및 침구, 빨랫대가 들어가도 여유있는가?
7. 가로등 등 안전한 주변환경을 갖고 있는가?
8. 창문이 마련되어 있는가?
9. 인덕션이 있는가?(인덕션이 몇 구인가)
10. 화장실이 깨끗한가?
11. 옆집 소음을 잘 차단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집을 알아볼 때에는 신축이지만 좀더 넓은 집으로 가게 되었다. 빌라였지만 높은 층이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찾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에서의 2번의 이사경험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남향이 아니어도 창문을 열었을 때 앞에 건물이 없는 게 중요해졌고 빌트인이 아니어도 빨랫대를 놓았을 때에도 내가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해졌다.
직장을 구하고 나서 새로운 지역에 정착했을 때에는 좀더 과감하게 행동했다. 부동산 투어를 해서 원하는 집을 얻고자 했는데 그결과 시작은 정말 만족스러운 집을 얻었지만 결말이 좋지 않았다. 그 덕에 부동산 등기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데 그 어느때보다 편하게 들어왔다. 도면이 공고로 공개되니 직접 가보지 않아도 얼추 구조에 대해 알 수 있었고(계약 전에 들어가볼 수 있디) 나라에서 제공하는 주택이니 사기 당할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파트형이었기 때문에 이전에 살던 오피스텔이나 빌라와는 달리 발코니가 생겼다. 계약 조건인 소득이나 무주택 세대주의 여부 등만 충족된다면 당첨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취방을 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돌이켜 보았다. 어쩌면 쉽지 않은 길을 나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거쳐온 것 같다.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고 발품 팔 체력이 있었다.직장에 다니지도 않았어서 점심시간에 짬을 내서 알아본다거나 퇴근 후에 지친 몸을 끌고 돌아다닌 것도 아니었으니. 그리고 부동산에 대해 무지했기에 내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고 그렇기에 선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만약 이런 과정이 없이 20대를 지났다면 아마 30대의 나는 좀더 어렵게 집을 알아보았을 것 같다. 눈은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져있었을 것 같고 내 집 마련에 대한 이상만 높은 채 현실에서의 준비는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닐테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이라도 어릴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그 후에 조금이나마 더 괜찮은 선택들로 이끈다고 생각하기에. 오만한 생각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