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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색무취 Aug 22. 2024

3-3. 무의미

아내의 상황은 어제와 유사했다. 적어도 중환자실 간호사의 말에 의하면 그랬다. 오히려 아내의 컨디션보다 내 생각에 더 큰 변화가 있었다. 어제부터 알아봤다는 전원은 여전히 알아보고만 있고, 약속받았던 Z병원에서도 거부당하다 보니 대학 병원 전원은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엄청난 절망감과 두려움이 나를 지배하고 압도하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에 있는 아내의 상황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간호사를 통해서만 업데이트를 받다 보니,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압박감이 가중되고 있던 내 머릿속 아내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압박감을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계속해서 중환자실 간호사들에게 전원과 아내의 상태에 대한 문의를 해댔다. 아내가 아픈 것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지금은 전원이 가장 시급했다. 도무지 방법을 알 수 없어 간호사를 붙잡고 거의 하소연했다. 대학 병원들은 받아줄 여력은 되는지, 담당의가 진짜로 전원을 알아보고 있는 것인지. 간호사들이 답을 알 리가 없는 질문들만 계속 던지고 있었다. 내가 여러 차례 문의했더니 간호사는 의료 기록을 지참하고 대학 병원들의 응급실에 가보는 것을 권유했다. 내가 워낙 귀찮게 해서 나를 쫓아내려고 한 것일 수도 있으나, 아무런 방법이 없던 내게는 소중한 새로운 통로였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나는 대학 시절을 보냈던 동네로 향했다. 나와 아내가 모두 같은 대학교의 졸업생이라는 점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큰 고민 없이 V병원으로의 전원을 시도하러 가고 있었다.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고, 삼촌의 지인인 의사에게도 전화가 왔다. 두 사람 모두 중환자실에서 강제로 퇴원시켜서 대학 병원 응급실에 억지로 찾아가는 것을 절대로 반대했다. 물론, 나도 그럴 생각으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있기는 무섭고 혹시나 아내의 의무 기록을 보고 응급실 측에서라도 전원 조치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에서 기인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어차피 중환자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몸부림은 아내의 컨디션이나 상황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그저 무의미한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도 내 절박함에 신경 쓰지 않았고, 내 의견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의견이 아니다 보니 입 밖으로 차마 내보일 수 없었다. 내가 아내 곁을 잠시 떠난다고 하더라도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V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아내의 핸드폰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연락해 볼 만한 사람이 있을지 찾아봤다. 장모님을 통해서 C병원에 있는 아내의 사촌 올케언니에게 연락하게 됐다. 내 목소리의 절박함과 불안정함이 충분히 전달됐을 텐데도, 본인이 신경과 소속이 아니다 보니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안타까운 결론이었다. 생각해 보면 일반 회사랑 비교하면 옆 부서의 일이었다. 지인 찬스를 써서 옮기는 게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절박하다 보니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제부터 시도하고 있었던 지인 찬스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야 했다.


아내의 지인 중에 나도 함께 아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다양한 이유로 개인적인 연락을 한지 엄청 오래됐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제는 아내의 병을 홍보하는 꼴이 될까 봐 마구잡이로 연락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내 기억 속에 의사, 간호사, 병원과 관련된 가족이 있었던 것 같으면 급박하게 통화 연결을 시도했다. 성향이 맞지 않아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들, 단순하게 용건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전화하면서 아내와 나의 인심을 테스트할 시간이 온 것이다.


택시에서 내려서 아내의 대학 동창이자 나와 동갑인 I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의 오랜 친구이면서 나랑 동갑이지만 이래저래 개인적으로 연락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I의 오빠와 아버지가 의사라고 했던 것 같고, 아내의 절친한 친구이기에 누구보다 자기 일처럼 여기고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하며 연락을 취해봤다. 절박하다 보니 명분이고 뭐고 다짜고짜 상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어색한 아이스브레이킹을 할 시간 따위도 필요도 없었다. ‘자가면역뇌염’을 설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병이고, 지인들도 마찬가지일 테니 아내의 상태 설명을 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상태를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해야 아내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상대방이 알아듣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쏟아냈다. I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으나, 내가 횡설수설하여 정신없다고 느껴졌는지 또박또박 힘 있게 식빵을 롤러로 펴듯이 얘기하며 내 기운을 북돋아 주고 달래주기 위해서 무던히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좋은 감정이 그다지 없는 친구고 그 친구도 나를 그저 친구의 남편이라고 생각했을 꽤 먼 사이였다. 그럼에도 전화 너머로의 위로가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잠시나마 아내가 아닌 내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전원이 거부되고 나서 잠시도 내가 갖고 있던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다. 잠시 골목길로 들어가 멈춰 서서 멍 때리게 됐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지금 아내가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아서 그랬는지 소리 내어 흐느끼는 눈물이 아니라, 먼 산을 보면서 겨우 침과 함께 삼킬 수 있는 정도로 소리 없이 눈시울만 뜨거워지는 눈물이었다. 힘내라는 위로를 받으면 힘이 나는 게 아니라 야속하게도 눈물만 났다.


앞선 친구와의 통화에서 큰 소득이 없었던 나는 아내의 동기이자 과 후배인 K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던 친구라서 거의 4년 전에 점심 한 번 먹은 게 전부였다. 원래는 말을 놓는 사이였으나 오랜만에 만나서 헷갈렸던 K는 갑작스레 말을 높일 정도로 서먹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전화하고 목소리를 듣자마자 진정된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눈치 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내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카카오톡으로 진료의뢰서를 보내주겠다며 전화를 짧게 끝냈다.


전화를 끊고 V병원 옆의 오르막길에 햇빛을 피해 혼자 서 있었는데 서러운 눈물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그 와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키기 싫어서 가장 응달진 곳을 찾아서 마스크를 낀 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아내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무서움에서 비롯된 눈물이 끝없이 차올랐다. 아내의 컨디션은 크게 악화되지 않았지만, 남편인 나의 능력 부족으로 아내가 적절한 시기에 대학 병원을 가지 못해 어떤 형태로든 잘못될까 하는 두려움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아침에 입고 나왔던 경량 패딩이 덥게 느껴질 정도로 날씨가 따뜻해졌으나, 마음은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디멘터들에게 지배당한 것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누가 됐든 상관없으니 바람처럼 나타나서 기적과 같이 소환해 주는 애니마구스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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