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것을 예약해야 한다는 것이 모순적이었다. 정기검진은 당연히 예약이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급성으로 아픈 것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거란 말인가. 서울 전역의 대학 병원의 각종 진료과들에 수시로 예약했다가 안 아프면 취소하는 것이 유일하게 적시에 진료를 받는 방법인가. 이 와중에 큰 병원들의 응급실은 환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고, 급한 외래 예약도 불가능하다면 도대체 아내처럼 급박하게 아픈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응급 질환에도 사전 예약제가 필요한 것인가. 응급 환자가 발생했는데, 전원 요청도 받아주지 않고 응급실도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면 도대체 병원들의 운영 목적은 무엇인가. 얼른 집에 가야 해서 정당하게 잡은 택시의 운전사로부터 뻔뻔하게 승차거부를 당한 것 같았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분통 터지긴 했지만, 그래도 Z병원에서 받아준다고 했으니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선택해서 받는 것이 어렵고 내가 원하는 수준의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마음 편히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갑갑했을 뿐. 우리나라에서는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게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었다.
곧 삼촌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내게 간단한 위로를 건네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진료의뢰서상으로 파악되는 아내의 상태에 대해 지나치게 긴 설명도 잊지 않았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고맙긴 했으나, 당장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의 안식이나 위로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Z병원 소속은 아니었고, 현재는 부산에 개원하신 분이었다. 그래도, 본인의 지인에게 연락을 취해서 Z병원 측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개인 휴대폰 번호를 기대했던 나는 02로 시작하는 번호를 진료의뢰센터라는 안내와 함께 받았다. 진료의뢰센터라는 부서가 명확한 도움을 의미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하긴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를 통해서 담당의를 호출하여 잠시 만날 수 있었고, 나는 전달받은 전화번호와 간호사 이름을 전달해 줬다. 담당의가 살짝 번거로워하는 눈치였으나 애써 무시하며 꼭 전원이 되게끔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Z병원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니 이런 것들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전원이 진행되길 기다리는 동안 아내 담당 간호사를 지속적으로 호출하면서 아내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계속 물어봐서 꽤 번거로웠을 텐데도 간호사는 크게 짜증 내지 않고 업데이트 내역이 없는 아내의 상태에 대해서 계속 브리핑해 줬다. 곧 전원이 될 텐데도 아내에 대한 각종 검사가 진행됐다. 오늘 중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는 환자인데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는 것 같아 감사하고 역시 이런 것이 프로 정신인가 싶었다. 물론 우리에게 응당 적절한 금전적 지출을 요구하겠지만, 전원 할 환자라고 마냥 눕혀두는 것보다는 훨씬 안심됐다. 하지만, 이내 뜨거운 현실의 철퇴를 맞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Z병원으로의 전원이 문제없이 진행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교수의 내선 번호나 개인 전화번호가 아닌 인터넷으로도 검색되는 진료의뢰센터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당황하긴 했지만, 어젯밤에 들은 말이 있으니 크게 의심하진 않았다. 내가 번호를 전달한 지 30분쯤 됐을까. 담당의와 다시 중환자실 앞에서 만났다. 전원 일정에 대한 안내를 해줄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담당의는 오히려 다른 소식을 전했다. Z병원의 중환자실에 빈자리가 없어서 받아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말을 지내보고 월요일에 다시 상황을 보자고 했다고 했다. 월요일의 전원도 약속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야심 차게 짰던 계획은 애들 소꿉장난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대학 병원의 의료 시설이 필요할 만큼 아내의 상태가 위중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아침에 담당의가 전원을 더욱 강력하게 권하는 것을 듣고 나니, 대학 병원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것은 곧 사망 선고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아내에게는 아직 호흡 곤란이나 급격한 증상 악화는 없었으나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담당의는 아침에 했던 말을 재차 반복했다. 본인 선에서 전원을 최대한 알아보겠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아는 지인을 통해 아내를 옮기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말이다. 정확히 그렇게 알아봤는데, 결국 여건이 안 돼서 실패하지 않았는가.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입장이 한 편으로 이해가 됐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과연 최선을 다해서 전원을 알아봐 주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도 들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들었던 말과 똑같은 말인데, 그 말을 들은 보호자의 상황이 180도 바뀌어서 마음속의 긴박감은 산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었다. 의료진 파업으로 인해 대학 병원들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지 않았다면 크게 걱정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어젯밤에 약속까지 받았던 Z병원조차도 그다음 날 아침에 바로 번복하는 상황이 연출되다 보니, 모든 대학 병원들이 아내의 전원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했다.
Z병원에서 주말과 중환자실 만석을 이유로 약속을 지켜주지 못하다 보니 상황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내가 호기롭게 세웠던 계획은 시작도 해보기 전에 끝나버렸다. 나와 삼촌은 둘 다 아내를 대학 병원에 보내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나고 보면 분명히 과한 생각이었지만 당시의 긴박감과 좌절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었다. 분명히 담당의는 최악의 상황에 호흡 곤란이 올 수 있다고만 언급했는데 이미 인공호흡기와 기도 삽관까지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보호자의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만 고려하게 됐고, 계속 똑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다른 경우의 수는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Z병원의 거부는 나와 삼촌을 혼란에 빠뜨렸다. 삼촌은 다른 지인들에게 급하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고, 나 또한 연락해 볼 만한 사람이 있을지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나의 좁은 인맥으로 연락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연락했던 상황이라 추가적으로 도움 청할 사람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연락을 돌리던 중에 삼촌의 지인이 등장해서 호기롭게 종전 선언을 했었는데 다시 처음부터 알아봐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 되었다. 멋모르고 종전 선언을 했던 하룻강아지는 다시 울며 어미를 찾아달라며 짖어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