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귀가한 나는 집에서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장모님과 만나야 했다. 과연 어디까지 알려주는 게 바람직할지 정답은 알 수 없었으나, 그나마 괜찮은 소식만이라도 알려주기로 했다. 다행히 원인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됐으며 적절한 약이 곧 투약될 거라는 소식을 중점적으로 전달해 줬다. 그리고 내일은 내가 병원에 일찍 가볼 테니 가서 어떤 조치들을 취해야 할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니 오늘 밤은 댁에 가서 쉬고 내일은 딸을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장모님은 두려움과 걱정 가득한 얼굴을 하며 우리 집을 나섰다.
나는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딸아이의 씩씩한 아빠가 되어야 했다. 영어 학원에서 돌아올 딸을 맞이하기 위해 픽업 장소로 걸어가던 중 한숨 돌리기 위해서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봤다. 아내가 좋아했던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늘은 따뜻한 주황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에게서는 주말을 맞이하는 설렘이 느껴졌다. 우리 가족에게도 여유로워야 할 주말이 불안하기만 했다. 나 자신에게 몇 초의 여유만 줬을 뿐인데도 눈치 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눈썰미가 좋은 딸이 내 눈과 표정을 보고 울었냐고 물어볼까 봐 황급히 눈물을 닦고 픽업 장소로 달려갔다.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을 들키는 것도 걱정됐지만, 눈치 빠른 딸이 걱정할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될까 조마조마했다.
나의 우려와는 달리, Y네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할 기대감에 들뜬 딸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잔뜩 흥분한 상태로 친구와 함께 하차했다. 감사하게도 Y엄마는 두 아이를 함께 인계받아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줬다. 나는 경황이 없었던 터라 아침에 딸과 약속했던 애착 인형과 잠옷을 집에 놔둔 채로 나왔었다. 평소 같으면 먹거리라도 사서 갔을 텐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에 센스 없게 인형과 잠옷만 챙겨서 Y네 집으로 향했다. 가면서 딸에게 아내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됐다. 병원에 있다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거짓말을 하는 게 나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딸에게 거짓말하는 것은 미봉책일 뿐일 것 같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짓말을 한다면 딸에게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기회를 주지 않는 것 같았다.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욕심의 산물일 것이다. 이 모든 것에 정답은 없겠지만 오답은 피하고 싶었다.
Y엄마에게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히 브리핑해 주고 아내가 중환자실에 있다고 설명해 줬다. 원래는 내일 아침에 내가 데리러 오려고 했는데 병원에 가서 사태 파악을 해야 하는 탓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딸을 픽업하러 올 거라고도 얘기했다. Y엄마는 감사하게도 아내만 신경 쓰고 딸은 자기가 잘 돌봐주겠다고 해줘서 내게 전혀 없던 여유 중에 1% 정도는 되찾아준 것 같았다. 입냄새가 가득한데 박하사탕을 입안에 굴려 가며 잠시라도 불쾌함을 덮는 일시적인 상쾌함을 얻었다. Y엄마도 최근에 본인이 크게 다친 이야기를 해주며 나를 달래주려고 했다. 스키를 타면서 날에 베였는데 거의 열 바늘 가까이 꿰맸다고 했다. 아내도 이런 외과적인 상처였다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그래도 아내도 나중에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오늘을 얘기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우리 딸을 잘 부탁한다고 하고 부리나케 Y네 집을 나왔다. 고민했던 것과는 달리 딸은 친구와 논다는 사실에 신난 나머지 아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엄마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 난 분명히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듣는 사람이 없었으니, 내 잘못은 없었다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다.
집에 와서 냉장고에 남은 음식들을 대충 데워먹고 본격적으로 직면한 걱정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 담당의도 성공하지 못했던 전원을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약효 확인이 오래 걸리는 약이 투여된다고 했는데, 약효가 들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단순히 요기를 채우기 위해서 생각 없이 입안에 음식을 밀어 넣고 있는데, 처음으로 내 어깨에 실린 무거운 짐의 정체를 깨달았다. 내 결정들은 아내의 여생을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중요한 결정들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들에서 하겠지만, 서비스 제공자들이 지금 제자리에 없다. 그렇게 생각이 들고 나니 두려움은 몇 배로 증폭됐다.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하고 어떠한 후회도 남기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생각나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주위에 대학병원 신경과에 재직 중인 사람이 있다면 소개를 좀 부탁한다며 이런저런 카톡방에 담당의가 작성해 준 진료의뢰서를 공유했다.
친구들은 역시 나보다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라 지인 중에 한 명씩 대학병원 교수/의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료진 파업으로 인해 당장 힘써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내일은 주말의 시작인 토요일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 요청을 하고 나니 그만큼 다양한 조언과 당부들이 몰려들었다. 무조건 대학병원을 가야 한다, M병원은 그나마 괜찮은 병원이니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그 병원에 머무르는 게 낫다, 신속하게 스테로이드가 투약되어야 한다 등의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너무도 두려웠다. 내게는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지식이 전혀 없었다. 다양한 관점의 충고를 주는데 반박하거나 수용하기 위해서는 내게도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늘 처음 알게 된 상황들을 대처하기에 내가 갖고 있는 정보의 양은 0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인가.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지식과 정보는 곧 돈벌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식과 정보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정보 비대칭에서 기인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각종 거래가 발생하고, 정보의 균형이 크게 무너진 상태라면 한쪽이 일방적인 이득을 보게 될 확률이 농후하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정보의 균형추가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에 있는 의사들은 각종 검사를 통해 아내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때, 나는 그 검사 결과를 듣고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기본적인 혈액 검사에서도 결과치가 정상 범위 안에 들어오는지 정도 파악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정도의 비대칭이라고 하면 집에 방이 몇 개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날인하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냉정하게 따지면, 우리나라 의료진이 집단 파업을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살려내는 사람들인데,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만큼 절박한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협상하면서 가장 많은 것을 얻어내려면 절박한 환자들과 같이 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주기 전에 봇짐을 전부 뜯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물에 빠진 사람을 자발적으로 건져주겠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아닌가. 아내와 같은 환자들과 그의 가족과 보호자들에게는 병을 치료할 지식도 능력도 수단도 없다. 심각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잔인하게도 모든 권한은 그들에게만 있으니, 그들은 그 권리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냉정해질 겨를이 없었다. 아내를 받아주지 않는 대학 병원들이 너무 미웠다.
엄마, 아빠에게도 상황 설명을 해줘야 했다. 아들의 아내가 중환자실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은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아들의 배우자가 더 걱정될까, 이제부터 고생길이 훤히 열린 아들이 더 걱정될까. 하지만,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겠다는 나의 욕심을 채울 만한 여유 따위는 없었다. 상황을 상세하게 전달해 줬고, 혹시 친척이나 지인들 중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에 외삼촌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어렸을 때, 삼촌의 아내인 숙모가 폐암으로 작고했었다. 내가 어릴 때의 일이라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오진 또는 의료 사고 같은 게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그래서인지 삼촌은 병원과 관련된 급한 일이 있다고 하면 항상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선다.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에 숙모를 보냈던 삼촌이라 본인이 느꼈던 위기감을 그의 조급한 목소리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삼촌에게 나의 상황을 공유했고, 삼촌은 지인 중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내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수소문했을 때, 큰 수확을 얻지 못했던 터라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도 삼촌이 나와 통화하고 있을 때, 의사 지인 몇 명과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Z병원 신경과에 있는 지인이 필요하다면 아내를 받아주겠다고 했다. 삼촌과 그 지인이 확실하게 말해주니까 하루 종일 불안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듯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은 느낌에 안도감마저 들었다. 내일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Plan B는 마련하지 않았는가.
오늘 내가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담당의와 간호사들을 지속적으로 재촉해서 아내에게 한 번이라도 더 신경 쓰게 유도하고 대학 병원을 알아봐서 전원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결국 의료진에게 아내를 믿고 맡겨야 하다 보니 조바심만 늘어났다. 내가 물리적으로 할 일이 없다 보니 잡생각만 늘어가고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치더라도 결과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생기니 아내에 대한 미안함만 늘어가고 무력감만 쌓여갔다. 결국 아내가 잘 이겨낼 거라 믿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