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간의 수면을 취한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곱만 겨우 떼고 야구 모자만 푹 눌러쓴 채로 아내가 있는 M병원의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택시 타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쓸데없이 화창했고, 밝은 햇살을 머금은 하늘은 눈치 없이 맑았다. 토요일 아침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제와 같은 두꺼운 옷차림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따뜻함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날씨마저 내 기분을 몰라 주는 것 같아 야속했다. 나는 이동하거나 각종 업무를 볼 때 옷과 짐에 최대한 구애받지 않도록 경량 패딩과 걷기 편한 스케처스 운동화를 착용했고 아내가 수납공간을 보고 감탄했던 크로스백에 각종 짐을 욱여넣었다.
어저께 간호사한테 물어보니 담당의가 보통 8~9시쯤 중환자실 회진을 돈다고 했다. 담당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나는 최대한 빨리 중환자실 앞에 앉아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7시가 채 안 된 시간에 도착해서 중환자실의 아내 담당 간호사에게 간밤에 별일 없었는지 확인해 봤다. 크게 악화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호전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는 어제저녁에 투약이 시작된 면역 글로불린이 기적적으로 하루 만에 약효가 발휘됐길 간사하게 기대해 봤다. 그리고 담당의에게 연락이 오거나 중환자실에 들르면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꼭 좀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어제 오후 내도록 죽치고 앉아 있었던 벤치로 복귀했다.
정신적으로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지만, 어제 하루 종일 마음 졸이고 잠까지 설친 탓에 신체적으로 매우 지친 상태였다. 잠깐 눈이라도 붙여보려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눈을 감았다. 다행히 매우 이른 시간이라 중환자실이 있는 층 전체의 불이 꺼져 있어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지나가던 미화원이 내가 딱했는지 층 전체의 불을 환하게 밝혀줬다. 나를 몰래 지켜보는 누군가가 아직 쉬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조금 앉아서 기다렸더니 8시쯤 담당의를 만날 수 있었다. 보호자인 나의 마음이 조금 더 조급해져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담당의가 말하는 뉘앙스가 좀 바뀐 것처럼 느껴졌다. 상태가 곧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얼른 전원을 알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제가 전원을 열심히 알아보겠지만, 보호자께서 직접 전원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섭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궁극적인 책임은 보호자인 나에게 있다는 말로 들렸다. 의료진 파업으로 인해 대학 병원으로의 이동을 보호자가 직접 알아봐야만 하는 상황에 분개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나는 겉으로 침착해하면서 속으로는 오히려 의기양양해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근사하게 준비한 Plan B를 꺼낼 때가 온 것이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착각하고 있었다.
담당의로부터 진료의뢰서와 지금까지의 의료 기록을 떼라는 당부를 받고 헤어졌다. 물론 어제보다 전원 권유의 강도가 강해져서 걱정됐지만, 어젯밤에 이를 위해 준비를 해뒀던 계획이 있지 않은가. 아내의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지만, 이제 전원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담당의도 만났으니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긴 하루를 준비하기로 했다. 전원을 할 때,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 영양 보충부터 든든하게 해야겠다는 주제넘은 출사표를 던졌다. 병원 건너편에 있는 파리바게뜨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면서 삼촌에게 어젯밤에 호기롭게 준비한 Plan B의 개시에 대한 논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환자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나는 보호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하고 있다는 무의미한 성취감과 자기만족에 취해 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 단백질은 챙겨 먹어야겠다며 닭가슴살 한 봉지와 햄 치즈 머핀을 쟁반에 담아서 여유롭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까지 주문하고 덤으로 분에 넘치는 통신사 할인까지 받았다. 할 일은 차근차근 다 하고 있다고 여겼다. 준비한 일들을 계획대로 진행하면 된다는 쓸데없는 자신감에 괜히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가게 점원이 닭가슴살과 빵을 데워주겠다고 가져갔으며,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의사가 했던 이야기를 전달해 줬더니, 내가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당연하게도 삼촌은 전원 여부보다도 담당의가 전원을 조금 더 강력하게 얘기했다는 것에 당황했다. 아내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었으나 내가 그 점을 놓치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8시쯤 되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Z병원에 있다는 지인에게 연락을 최대한 빨리해 볼 테니 얼른 진료의뢰서와 의무 기록을 보내라고 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원 준비가 아니라 전원이 필요했다.
나는 아침으로 방금 산 닭가슴살, 머핀을 순식간에 우걱우걱 집어삼키고, 우리나라의 말도 안 되는 일회용품 정책에 대해서 짜증 낼 겨를도 없이 방금 나온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원샷하듯이 목을 열어 털어 넣었다. 황급히 길을 다시 건너 아직 본격적인 업무 시간이 되지 않아 비교적 한가한 원무과의 당직 직원에게 아내의 진료의뢰서와 의무 기록 발급을 요청했다. 병원들의 일반적인 업무 시간이 토요일 1시까지 일 거라고 내 멋대로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전원을 3~4시간 안에 완료해야 했다. 타임 어택이 시작됐다는 생각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이메일이나 문자로 파일들을 전달하려면 pdf나 jpg 파일 형태가 필요했는데, 원무과에서는 서면으로 인쇄본만 제공한다고 했다. 벌써 초조했다. 토요일 아침 대림동에 스캔이 가능한 곳이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두툼한 서류봉투를 들고 다니며 병원 앞을 잠시 헤매다가 정신을 차리고 네이버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다행히 주위에 큰 사무용품점이 있었다. 혹시나 스캔이 가능한지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내 마음도 모르고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와보라고 했다. 부리나케 달려가서 갓 문을 열고 청소 중인 주인에게 급하게 스캔을 부탁했다. 다행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삼촌이 알려준 이메일 주소로 아내의 진료의뢰서와 의무 기록을 보내줬다.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을 때, 처음으로 진료의뢰서와 의무 기록들을 정독했다. 의무 기록들은 검사 결과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전혀 모를 결과지뿐이었고, 진료의뢰서도 영어 단어로 가득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상병명만큼은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자가면역뇌염’과 ‘밀러-휘셔 증후군’.
살면서 처음 보는 병명이었다. 일본 뇌염은 들어봤어도 자가면역뇌염은 처음 들어봤다. 어젯밤부터 나와 함께 걱정하고 있던 H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되면 대학 병원들에 전화를 돌려서 최대한 빨리 예약이 가능한 외래 일정이라도 잡아보라고 권했다. 파업 사태가 장기화될 것 같고, 어떤 병원으로 옮겨야 할지도 모르니 예약이 가능한 곳이라면 일단 모두 번호표를 뽑아놓자는 요량이었다.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아 아내의 진료의뢰서와 의무 기록을 받았을 삼촌 지인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H가 찾아준 병원들에 전화를 걸어보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는 업무 시간이 아닌 탓에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던 병원들이 다행히 토요일 아침에는 통화가 가능했다. H가 빈자리가 있어 보인다고 해서 전화한 B병원의 진료 예약 상담원은 적절한 의사를 연결받으려면 상세한 병명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상담원은 당연히 해야 할 말들을 했지만 초조하고 예민해지기 시작한 나에게는 웬만한 질문들은 공격처럼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사람은 나였기에 최대한 나긋나긋하게 아내의 병명은 ‘자가면역뇌염’이라고 여러 차례 전달했다. 신경과 예약을 도와주겠다고 하던 상담원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오늘은 토요일이라 신경과 예약 가능 여부는 알 수 없고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상담 예약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도와준다는 말은 반복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통화를 종료하기 전에 아내가 거기로 전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보호자가 문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담당의가 병원 쪽에 협력 요청을 해서 전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확인만 받은 셈이다. 이후에 생각나는 대로 X병원과 Y병원에도 통화를 시도해 봤으나 큰 소득은 없었다. 모든 통화는 서류들의 스캔을 했던 사무용품점 앞에서 이루어졌다. 점점 맑아지는 하늘, 따뜻해지는 햇살, 활기를 찾기 시작한 사거리의 차량 운행, 모든 것들이 괜히 야속하기만 했다. 애초에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직접 전화를 통해 말로 확인받으니 답답해졌다. 담당의는 내가 직접 알아보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하는데, 대학병원들에서는 지금 아내가 있는 M병원에서 연락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