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집안, 학벌, 직업 같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그냥 내면의 결이 꽤 고운 사람이라고 말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할 줄 아는 사람, 공감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 섬세한 언어로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따뜻하고 좋은 사람.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ISFJ 수호자
사랑은 남과 나눌 때 커진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수호자(ISFJ)는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근면하고 헌신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이들은 동료와 친구의 생일과 기념일을 잘 챙기며,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동시에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또한 감사를 요구하기보다는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진정한 이타주의자인 수호자는, 다른 사람의 친절에 더 큰 친절로 보답하며, 열정적이고 겸손한 태도로 업무와 사람을 대한다.
매우 충실한 성격으로 친구나 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까운 사람의 어려움 앞에서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손을 내민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추구하고, 그들의 세세한 정보까지 잘 기억해, 친구를 만들고 관계를 유지하는 데 큰 강점을 가진다. 세심하고 사려 깊은 성격으로 주변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다.
이렇게 완벽한 인간이 나라니... 너무 잘 들어맞는다.
한때의 나, 혹은 육아 전의 나, 또는 육아와 분리되어 있었던 나 말이다.
하지만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헌신적이고 책임감은 있지만 감정 조절을 못하는, 화가 나면 헐크로 변하는 내가 되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솟아 옷이 찢어질 만큼 몸집이 커지고,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헐크.
그런 헐크가 바로 나였다.
아이가 일부러 한 일이 아닌데도, 혹은 장난으로 한 일이었어도, 한두 번은 참지만 내가 정한 선을 넘으면 바로 헐크가 된다.
"엄마, 화내지 마. 괴물 같아. 무서워."
첫째의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화내지 않을게” 다짐해 보지만,
잠시 후 또다시 헐크가 소환된다.
이제는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거나 바닥을 쳐야 본성이 나온다고 했던가?
그동안 나는 육아 전의 나였다.
그때의 나는 여유가 있었다.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여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자유, 놀고 싶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 그런 여유.
지금의 나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는 것들이다.
쉬고 싶어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고,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 있다.
친정엄마가 도와주고 남편이 도와줘도, 결국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까.
조용히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다.
어린이 만화 OST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틀어놓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싫을 때까지 읽다가,
먹다 남은 커피잔을 그냥 식탁 위에 둔 채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잘 수 있는 그런 삶.
육아 전엔 너무 당연히 누리던 나의 삶.
갑자기 박탈당한 그 삶이 그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건 아이를 사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육아를 시작하면, 엄마는 사람이 아닌 '엄마'가 된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감내하는 존재.
지금 보니 ISFJ가 가장 잘 하는 그런 것들이네.
쉬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고, 내가 보고 싶은 TV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엄마답지 않은 사람이 된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지만,
육아를 시작하고 헐크가 되면서,
내 밑바닥의 밑바닥을 계속 마주하고 나서야
내가 정말 볼품없는 인간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