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공부하는 중에 Life story를 써 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어린 시절 기억나는 순간부터 써내려 가다가 청년기를 지나 결혼기에 들어가는 중이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life story를 쓰는 과정은 마치 간간히 다락방에 올라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다락에 잔뜩 쌓여있는 물건들 하나하나를 꺼내어 만져보고, 추억을 되새겨 보고, 먼지를 털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고 나면 살아온 날들이 정리되면서 앞으로 한 발짝 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결혼생활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진흙탕이 없었다. 세 딸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으니. 전후 사정이야 구구절절해서 다 쓰려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하는 친정생활이 편할 리 없었다. 당시 술로 세월을 보내시던 친정아버지의 따가운 눈총 속에 날마다 가시방석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한 티가 팍팍 났었다. 겨울에 얇은 잠바를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나이트 근무를 끝내고 피곤에 절어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애써 못 본 척했다. 내 짐만 해도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신문에서 미국 간호사 시험 준비학원에 관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공부를 손에서 놓은 지가 거의 이십 년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설명회를 참석한 후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두꺼운 영어 원서를 읽고 쓰고 외웠다. 살림만 하던 사람이 공부하는 사람들 틈에서 한자라도 알아들어보려고 애를 썼다. 한참 주눅이 들어 있던 때라 내 모습이 초라했는지 스터디 그룹에 끼어주길 망설였다. 모른 척하며 꼭 붙어 같이 공부했다. 여기서 떨어져 나가면 영영 기회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일 년 여의 공부 끝에 미국 간호사 시험, NCLEX에 합격했다. 그때의 감격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깊은 늪 속에 빠져 서서히 가라앉던 내가 누군가가 내미는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은 느낌이었다. 이제 빠져나갈 수 있겠구나. 긴 터널에서 한줄기 빛을 본 순간이었다.
물론, 긴 터널을 다 빠져나오기까지는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순간의 작은 선택이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넘어가는 터닝 포인트가 될 때가 있다. 미국간호사 공부를 시작한 것이 내게는 그런 일이다. 시댁과 친정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던 작고 연약한 새 한 마리가 그제야 홀로 날아갈 힘을 얻은 것이었다.
미국 간호사 공부를 시작하던 시기를 쓰면서 왈칵 눈물이 났다. 라이프 스토리를 쓰며 나의 인생을 주욱 돌아보니 내게는 어디에선가 주어진 생명의 힘이 있었다. 수많은 이상한 선택들로 악순환을 거듭하던 내가 생명의 힘으로 드디어 살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나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여전히 힘들고, 답이 없고, 혼란스럽다. 단지 이제는 두려워 떨던 작은 새가 아니라, 튼튼한 날개를 가지고 홀로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다른 이들을 먹이기도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결혼 초기와 중기를 지나 후반으로 접어들어간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을 거쳐 성장기를 지나 라이프 스토리의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지고 관절도 아프고 머리에는 흰 눈이 잔뜩 내려앉았지만 내 안에 생명력은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마음의 눈은 더 밝아지고 정신은 나날이 풍성해지고 있다.
Life story를 쓰면서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폭삭 속았수다."
"정말 수고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