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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한석사 Aug 08. 2024

어린왕자 in SEOUL(#02어린왕자와 만남)

아이가 믿어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보다 경험이 적어서 거짓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다. 말 그대로 경험이 없으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그렇다고 아이를 무시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무시한다. 하지만 어른이 아이보다 나은 것은 경험뿐이다. 어른이 아이보다 낫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책을 읽었고 사회생활을 하고 공부를 했기에 아이보다 아는 것일 뿐. 경험을 빼고 그 본질을 놓고 판단한다면 어른보다 나은 아이는 수두룩하다. 차라리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그래서 아이는 아이처럼 대하지 말고 어른처럼 대해야 한다. 다니는 회사 사장님처럼 대해야 하고 전공과목 교수님처럼 대해야 한다. 팬클럽의 아이돌처럼 사랑해 줘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어린 왕자가 나한테 왔을지도 모른다. 책을 천 번이 넘게 읽어서 온 것은 아닐 테지.     


천 번 넘게 읽으면 혹시 가능하지 않겠냐고 생각도 했지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것은 생각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지구 종말을 믿고, 귀신과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어도 나에게 일어난 일은 적어도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도 현실적이지 않게 나에게 다가왔다. 그 넓은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났던 생텍쥐페리처럼. 만약 그런 상황에서만 사람들을 만났다면 어린 왕자도 정말 악취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10년을 일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갔을 때였다. 전 직장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탈모, 허리통증, 목 결림, 거북목, 약해진 무릎관절, 어깨결림, 무좀, 치질, 비중격만곡증 등 처음 들어보는 병들이 내 몸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누적됐다. 그 모든 것이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배려도 없고 자기만 아는 기회주의자였다. 웃겼던 건 내가 아는 정상 범주의 사람들은 입사하고도 일찍 퇴사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10년이나 버텼으니 정상 범주의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동굴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버텨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니 나도 정상 범주의 사람은 아닐 테지. 보통은 비바람이 몰아치면 집으로 돌아가거나 잠잠해지면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했겠지.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나만의 아지트에서 먹고 잘 요량으로 캠핑 장비와 식량을 준비해서 반나절에 걸쳐 동굴로 옮겨놨다. 그곳이 내 아지트다. 동굴 내부는 밖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온다면 느낄 수 있는 아늑함과 적당한 내부 온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짧은 미로 길이 있어 불빛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불을 피워도 공기도 적당히 순환되었다.     


아지트로는 최고인 이 공간에서 어릴 때를 보냈다. 학교 소각장에서는 문제집뿐만 아니라 아지트에 어울릴 법한 물건들이 많이 나와 끊임없이 동굴로 날랐다. 낚시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바로 앞에서 낚시해서 회도 떠먹고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들어오는 길이 험해 오랜만에 들어와도 나 말고는 아무도 들어온 흔적이 없는 곳이다. 바닷가 마을이라 사는 사람도 없어 발견해 줄 사람도 없다. 그런데 비바람이 몰아 치던 그날은 그렇게 내가 발견되었다. 나 외에는 절대로 누군가 들어올 수 없는데 잠을 깨운 것은 어린 왕자였다.     


“제발, 풀밭을 그려주세요, 네?.”


말조차 안 나왔다. 너무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풀밭을 그려줘요. 양이 배고파 죽으려고 해요.”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다 그만 허리를 다쳤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끙끙대며 주변을 둘러보니 노랑머리의 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어린 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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