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는 한동안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는 옆에 있는 벤치에 조용히 앉아, 사람 구경을 시작했다.
서울의 거리는 어린 왕자에게 너무나도 신비로운 곳이었다. 머리카락이 긴 사람, 몸집이 큰 사람, 작은 사람, 피부색이 다양한 사람들까지. 하지만 어린 왕자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은 듯, 그들의 뒤에 서 있는 커다란 건물을 바라보았다.
“저기 빛나는 바오바브 나무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어린 왕자는 사람들이 그 커다란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고, 다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크게 웃었다. 아프리카에서 여우가 보여주었던 개미굴이 떠오른 것이다.
“개미굴 같다. 개미나 사람이나 똑같아.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던지. 저 굴 안에는 여왕개미 대신 여왕사람이 있겠지?”
어린 왕자는 개미굴 같은 그 건물을 신기한 듯 계속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몇 분 간격으로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잠잠해지는 광경을 보며 어린 왕자는 더욱 신기해했다.
"어휴, 뭐가 이렇게 사람들이 많담."
주변을 둘러보던 어린 왕자는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저 사람 이상하네. 왜 앞을 안 보고 걸어가고 있을까? 얼굴은 엄청 즐거워 보이는데.’
어린 왕자는 남자가 왜 그렇게 즐거워하는지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남자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손에 든 물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걷다가,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무엇을 보면서 그렇게 걷는 걸까?’
어린 왕자는 궁금했다. 그 남자는 심지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어린 왕자가 듣기에는 그리 아름답지 않은 노래였지만, 그런대로 들어줄만 했다. 한참을 따라가다 보니, 남자는 인기척을 느끼고 어린 왕자를 쳐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꼬마야. 여기서 뭐하니? 너는 외국인이구나. 황금빛 머리가 아주 예쁘네."
어린 왕자는 남자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외국인? 그게 뭘까? 황금은 나도 알아. 아프리카에서 만난 조종사 아저씨가 알려줬지. 아저씨는 멋진 비행기를 가지고 있었어.’
어린 왕자는 남자의 말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남자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외국인은 뭐예요?"
어린 왕자는 또 그가 본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개미굴 같아 보이는 건물, 빛나는 나무처럼 보이는 건물,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꼬마야, 잠깐만.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걸 물어보면 대답하기 힘들어. 어디서 왔어?”
어린 왕자는 당당히 대답했다.
“나는 혹성 B612에서 왔어요. 내가 사는 별에는 장미가 있어요. 우리는 길들여졌어요.”
남자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꼬마야. 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도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니?”
어린 왕자는 온 몸에 이것저것 치렁치렁 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멋있다는 게 뭐예요?”
남자는 잠시 고민도 없이 말했다.
“최고로 멋있다는 거야. 너도 황금빛 머리와 하얀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최고로 멋있어.”
어린 왕자는 남자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좋은 뜻이라는 생각에 웃음을 지었다.
‘최고는 하나여야 하는데, 최고가 여러 개라니. 이상한걸.’
남자는 서둘러 덧붙였다.
“형은 회사의 노예라 출근을 해야 해. 너와 이야기하는 동안 출근 시간이 줄어들었어. 이제 가야 해.”
어린 왕자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남자는 설명을 덧붙였다.
“노예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람을 말해. 거부할 수 없지. 아무튼, 형은 이제 회사에 가야 해. 안녕, 꼬마야.”
남자는 어린 왕자에게 손을 흔들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어린 왕자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키는 대로? 그렇다면 나는 장미의 노예구나.”
남자가 사라진 뒤에도 어린 왕자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장미가 있는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