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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Oct 06. 2024

너의 잘못도 문제도 아니야.

이 내용을 쓸지 말지 조금 고민을 했다. 하지만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시기는 감정을 느끼고 바로 직후이기 때문에 써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지금 매우 평온한 상태이다. 그리고 이 평온한 상태가 되기까지 정말 길고 끝이 안 보이는 힘든 시간이 존재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부터 감정선에 문제가 생긴 것을 느꼈다. 가장 큰 원인은 목표에 대한 실패 그리고 목표 지향적 삶만을 살던 나에게 한순간에 목표가 사라진 것이 원인이었다. 나름의 방법으로 계속해서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감정을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괜찮아지지 않았고 그렇게 2개월 주기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1년... 2년.... 5년째가 되던 해에 그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한 감정의 늪에 빠지게 됐다. 그전에도 여러 번의 고비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상담을 받으며 다시 감정을 회복시켰다. 하지만 이번 우울감은 내가 지금까지 극복해 냈던 감정의 늪과는 너무 다르게 무기력이라는 감정이 함께 지배했다. 무기력이 얼마나 무서운 감정인지 이전까진 몰랐다. 하지만 우울감보다 무서운 감정이 바로 무기력한 감정이라는 것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5개월 정도 방 밖을 나가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공허한 마음을 폭식으로 채워나갔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무의 상태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어떻게 다시 이 감정을 원점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전에 느껴 봤던 우울이란 감정은 적어도 해결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틈은 존재하는 우울감이었다. 하지만 이번 우울감은 틈조차 없는 아주 밀도 높은 무기력함과 우울감이었고 나의 눈까지 가려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게 했다.


그전부터 계속되었던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학기 중이었던 나는 정말 이 시기가 그 어떤 시기보다도 힘들었다. 나만 아는 아픔, 힘듦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도저히 이러다간 내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든 어느 날 정신과에 상담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집 앞을 나가는 게 이렇게 많은 다짐이 필요한 건가 싶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은 감정에 빠지면 단지 방 밖을 벗어나는 것도 힘들다. 그렇게 정신과에 가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단 2주 약을 먹었을 뿐인데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을 먹는다고 모두가 나와 같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닐 테지만 나에겐 좋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한 달째 약을 먹으니 어느 정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도 우울이라는 늪에 빠질 것 같을 때 약을 먹곤 한다.


매번 찾아오는 우울과 무기력가의 시기 나를 가장 탓했던 것 같다. 난 왜 의지가 없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다들 이겨내는데 나는 왜 못 이겨내는지... 감정은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 감정 속에서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지내왔다. 하지만 완전히 무너지는 감정을 내 의지로 돌려놓지 못하자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의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니 더는 나를 깎아내리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혹 나와 같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다고 그리고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괜찮아질 거라고 말이다.


지금 난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한 상태의 감정을 잘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이기에 때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한다. 그 감정 자체를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전에 힘들었던 4년이란 시간이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누군가 보면 감정에 함몰되어 시간을 낭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에 함몰된 시간이 있기에 더 다양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가까이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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