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랑 숙제를 하고 왠지 임테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는데, 꾹 참고 있다가 9일 차에 해봤다.
9일 차인데 분명 희미한 줄이 있었다. 사실 왠지 임신일 것 같았던 이유가 가슴이 너무너무 아프고, 배가 미친 듯이 고팠다. 밥을 먹고 또 무언가 먹고 싶었고, 군것질을 잘 안 하는데 군것질도 계속 당기고 난리도 아니었다.
단것도 안 좋아하는데 단것도 계속 먹고 싶고,, 빵을 입에 물고 살았었다.
오빠는 없는 것 같다고, 자기는 안 보인다고 했는데 11일 차쯤 두줄이 확실히 보이니까 이제 보인 다고 했다.
둘이 처음으로 확실히 두 눈에 한 번에 보이는 두줄을 본 거라, 다른 생각도 안 나고 그냥 기분이 너무 행복하고 기쁜 감정밖에 없었다.
13일 차까지 임테기를 했는데 생각보다 더디게 진해지는 임테기라서 조금 겁이 났지만, 카페에서 정체기가 있다고, 한방에 확 오른다고 해서 조금 기다려봤다.
병원에 전화를 해서 임테기에 두줄을 확인했다고 하니 이날 내원하라고 했다.
근데 거의 생리 예정일 1주일 후에 오라고 하는데 바로 오라고 해서 조금 신기하긴 했다.
매일 아침마다 임테기를 하는 것이 루틴에 추가되고, 임테기 스크랩을 하기 시작했다.
살살 진해지는 것 같이 보여서 뭔가 희망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 내원하고 접수를 했는데, 원장님이 왜 벌써 왔냐는 식으로 물어보길래, 전화했더니 오늘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왔다고 하니 어.. 아닌데,, 이상하네~ 하고 초음파를 보러 갔다.
이때부터 찝찝함 시작.. 당연히 아기집은 보이지 않았다. 왜냐면 그날이 생리 예정일이었어서 절대 보일 수 없는 주수였다.
아기집 같은 형체는 보이는데 아직 보이는 시기는 아니니까 피검사로 확인하자고 해서 진료실에서 나와서 채혈을 하고 왔다. 채혈은 또 산부인과건물에서 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채혈을 하고 올라와서 피검사 결과를 전화로 들을지, 직접 듣고 갈지 했는데 집 가서 전화로 듣겠다고 했다.
근데 20분 정도면 나올 것 같으니 듣고 가셔라-라고 하셔서 기다렸다.
나는 그때 집에 갔었어야 했다.
네이버 카페에서 저장했던 피검 수치를 몇 번이고 다시 봤다.
오늘이 4주 0일째니까 최소 50은 넘어야 하고, 평균 75 정도 나온다고 했다. 100 이상이면 정말 좋은 수치니까 100 이상이 한방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검사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오빠는 밖에서 기다리고 나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호사가 말한 피검사 수치는 23.
평균수치에도, 주수에 맞는 범위에도 속하지 않은 23. 심지어 한참 떨어지는 수치.
의사는 듣더니 "23? 너무 낮다- 조만간 생리하겠다." 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미소를 짓는지도 모르겠고, 그때부터 아무것도 들리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임테기에 분명 두줄이 있는데, 조만간 생리를 한다니?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진료실에서 생리 터지면 2일 차에 오라고 했다. 일단 어찌어찌 대답을 하고 나왔는데 오빠가 내 표정을 보고 무언가 잘못됨을 직감한 표정이었다.
오빠를 보자마자 눈물이 너무 나올 것 같았는데. 일단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납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도망치듯이 병원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오빠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울음이 너무 나서 꺽꺽거리면서 말을 해줬다.
피검사 수치를 했는데 23이라고, 의사가 임신이 아니래 조만간 생리하겠다고 말했다고
네이버에 4주 0일 피검 수치 23을 검색했는데 다 안 좋은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 "화유", 화학적 유산이라는 뜻이었다.
임신 수치는 나오는데 임신이 아닌. 화학적으로 수치가 나온다는 의미.
요 며칠 기분이 천국 위를 걸어 다니다가 바로 지옥으로 직행했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한마디도 없었다. 내가 우느라 한마디도 못했다.
울다가 핸드폰으로 검색하다가. 또 울다가 검색하다 집에 도착해서 그냥 누웠다.
집에 왔는데 엄마한테 카톡이 왔었다.
아빠가 태몽을 꿨는데 혹시 소식이 있는지 물어보는 카톡이었다.
엄마한테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털어놓았다. 처음 겪는 일. 어디 안 털어놓으면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엄마도 화유, 화학적 유산이라는 단어는 생전 처음 들어봤고, 나를 위로해 줬다.
위로해 주다가 현실적인 조언도 해줬다. 벌써 내가 이렇게 무너지면 안 된다고. 정신 차리라고 했다.
아직 아기집을 본 것도 아니고, 아기를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없는데 수치만 나왔던 거면,
나중에 어떻게 버틸 거냐는 엄마의 말에 한참 울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방에서 누워서 울다가 거실에 앉아있는 오빠한테 갔는데
오빠도 오빠 나름대로 검색을 엄청 하고 있었다.
더디게 오르는 피검사 수치도 있대. 조금은 기다려보자. 다른 병원에도 한번 가볼래?
항상 든든한 우리 오빠였지만 이날 더더욱 더 든든한 산 같았다.
오빠도 속상하고 슬플 텐데, 내색 안 하고 덤덤하게 정보를 찾아보는 게 너무 고마웠다.
오빠를 꼭 안고 엄마랑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가 이런 말을 해주더라,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오늘까지만 속상하고 울고 이제 안 울겠다고 했다.
진짜 엉엉 잘 울었다. 근데 이때 안 울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울길 잘한 것 같다.
다음날 아침 거짓말 같이 가슴 통증은 사라졌고, 젖꼭지도 스치기만 해도 아파서 브라를 입고 벗을 때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아무런 느낌도 안 났다.
사실 임테기가 진해지거나 증상이 계속되면 다른 병원에 가보겠다고 생각했는데,
임테기도 옅어져서 그 생각은 접어두었다.
임테기로 두줄, 임신 확인하고 D+25 피검 수치를 듣고 정확히 일주일째 생리가 터졌다.
하루하루 점점 연해지는 임테기를 보면서 진짜 아니었구나.. 속상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MTX, 소파술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리가 터지고 병원에 전화해 진료 예약을 잡고, 내 첫 두줄의 임테기 마지막에 작별인사를 했다.
아직도 저 임테기를 보면 기분이 들쭉날쭉하지만, 그래도 내 첫 임신의 기록은 이렇게 화유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