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 Aug 15. 2024

우리가 왜 난임 ’환자‘인데?


시간이 지체될수록 나는 나도 모르는 압박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매달 임테기를 구매하느라 지출금액은 점점 늘어나고, 흔히 말하는 "증상놀이"에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할 정도였다.

네이버 카페에 가입하고, 배란초음파를 보고 자임에 성공했다는 게시글을 많이 봤었는데 항상 모르는 척 무시했었다. 나는 산부인과가 무서우 니까.


어느 날 불현듯 속으로 '산부인과에 가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산부인과 갔을 때는 무섭 긴 했어도 어찌어찌 진료는 보고 왔으니까..

여기는 시골이 아니니까 여기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임신을 하게 되면 가야 할 곳이니까, 어떻게든 참고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빠랑 산부인과 진료받는 걸 상의해 봤고, 우리는 배란초음파를 보면서 임신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근 몇 년간 내가 무서워하고, 못 갈만한 곳은 오빠랑 다니면서 조금 괜찮았는데.

산부인과 진료일은 진짜 너무 무서워서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예약 시간이 다가와서 이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손에 땀이 너무 나고, 등에 식은땀이 너무 많이 났다.

막상 엘리베이터를 타니 심장이 터질 것 만 같고 너무 무서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생각하는 산부인과는 우중충한 조명에 옛날 몰딩, 색이 다 바랜 간판, 조용하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가진 이미지의 병원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보이는 산부인과는 너무 다른 곳이었다.


조명도 너무 밝고 환했고, 접수대에 계신 분들은 너무 너무 친절하고 밝았다.

임산부들도 엄청 많았고, 나를 쳐다보면서 수군대는 사람, 눈을 흘겨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처음 받은 진료도 너무 친절했다. 아니 너무 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친절했다.



나는 생리 주기가 길다. 주기가 35일 정도 되니까 28 일 주기보다 일주일정도 차이가 난다.

의사 선생님이랑 주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기본 검 사를 했다.

이번달에는 배란 초음파를 보면서 시도해 보고, 다음 달부터 배란유도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남들은 28일 만에 임신시도를 하는데 나는 35일마다 시도하니까 시간을 맞추면서 주기적으로 배란을 원활 하게 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첫 시도는 시원하게 실패했다.

임테기에는 매직아이로도 보이지 않는 깨끗한 흰 바탕만 있었다.

생리 2일 차가 되고 배란유도제도 처방받을 겸 산부인 과로 향했다.


접수대에서 접수를 하고 상담을 받는데 마침 오늘부터 난임센터가 진료를 시작한다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검 사와 진료인 배란초음파 등등 임신 전 검사/진료에 관 한 건 앞으로 난임센터에서 진행한다고 해서 나는 난 임센터로 던져졌다.


그때부터 기분이 심란하고, 무언가 이상했 다.

엥? 내가, 우리가 난임이라고? 나이도 젊은데 왜 난임이라고 하지..?

어리둥절하게 난임센터를 방문해서 초진 접수를 하는 데 자꾸 '환자'취급을 해서 점점 짜증이 났다.

나는 그냥 배란 초음파 보러 온 건데.. 나 이제 두 번째 방문인데.. 저번에는 환자라고 안 했는데 왜 여기는 오 자마자 나를 환자 취급하는지 짜증이 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임'이라는 단어가 나를 누르는 압 박감은 심해졌고, 나조차도 그 압박감이 쌓이는지 몰 랐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단 걸까? 인정하기가 싫었던 걸까?


이전 01화 내가 가지고있던 산부인과에 대한 트라우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