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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승섭 Sep 06. 2024

마지막 이야기

― 세상 끝에 위치한 어느 종점

   우리는 늘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지 대화를 만드느라 정신을 놓고 있는 동안 버스가 후진으로 달린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로 갔다 종점이에요 내려요 버스 기사가 말하고 우리는 멀뚱멀뚱 주위를 둘러보다 하는 수 없이 내린다 버스는 유유히 떠나가고 잠시 망설인다 살아본 적 없는 세상인 것 같아


   정류장에 앉은 노부부에게 다가가 묻는다 어르신 지금이 몇 년이에요? 묻자 젊은 사람들이 무슨 실없는 소리냐고 타박을 듣는다


   우리는 두리번거리다 전봇대에 붙은 포스터를 본다


   2000년에는 우리가 세상에 없었다


   버스가 다시 오지 않겠어? 우리는 기다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초가을이 오고 늦가을이 떠나가고 눈이 펄펄 내리고 우리는 늦은 후회를 했다


   텅 빈 버스 뒷좌석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좀 더 먼 과거로 가고 있을 거라고


   지구가 네모나다고 믿었을 때 빙하 위에 선 사람은

   안개 너머에 세상 끝이 있다고 믿었겠고


   세상에 없는 어느 절벽에 대해

   발만 디딜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정류장에 대해


   거기서 또 다른 우리가 손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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