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ricky boy
Nov 11. 2024
그 후 수능을 치르고 졸업을 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 재수를 선택했다. 재수를 시작할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전에 불안했던 이유들 중 대다수가 사람 간의 문제였고, 이제는 그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으니 불안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불안은 또 다른 형태로 변해 나를 괴롭혔다. 작년처럼 항상 걱정하며 공부하는 나를 발견했다. 도저히 이 내면의 고통을 혼자 견디기 힘들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로 했다. 정말 많은 고민 끝에 결심한 일이었다. 내가 느끼는 불안은 누가 들어도 ‘비정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공감할 만한, 조금은 덜 심각해 보이는 불안들만 이야기했다. 내가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걱정들은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보여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불안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누나와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그냥 신경 쓰지 마. 뭘 그런 걸 걱정하니? 아무도 너 신경 안 써.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공부나 해.” 예상하던 답변이었다. 책이나 영상에서도 늘 나왔듯이 “네가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그래도 이런 말을 들으니 한결 하루 정도는
괜찮아졌다. "아 사실 별 거 아니었구나."
그렇지만 일시적인 불안 해소뿐이었고, 며칠 뒤에 다시 그 감정이 밀려왔다.
이젠 집중이 안 돼 자리를 옮기고, 독서실도 옮겨가며 공부했다.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혼자 책상에 앉아 공부하며 거대한 불안이라는 허상과 싸워야 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고,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항상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자기혐오의 굴레에 빠졌다.
결국 이 불안을 안고 가기로 했다. 이게 바로 ‘나’라고, 이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걱정하는 일들이 일어나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원래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더 힘들었던 이유는, 나는 스스로를 ‘걱정 같은 거 없는 사람’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계속해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괴리감을 느꼈고, 이로 인해 스트레스는 더 커져만 갔다. 차라리 ‘걱정 많은 나’를 받아들이고, 오로지 걱정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만 감당하기로 했다.